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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16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신관에 대해. 플라톤의 신. 플라톤의 신관은 이신론(理神論)적인 신관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삶의 내적 목표가 신을 닮으려고 하는데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여기서의 신이란 정신적 영역을 지키는 존재로서 이러한 정신적, 신적 영역에 참여하는 것이 인간존재의 내적인 목표라는 것이다. 특히 그의 저서인 에서 신은 최고의 것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설명된다. 신은 이데아계와 현상계를 정립하기 위한 존재로 이해된다. 또한 신은 무에서부터의 창조자가 아닌 태초의 무질서에서 질서 있고 계획된 우주를 산출해낸 존재라고 말한다. 결국 만물은 이러한 절대자를 위하여 존재하고 모든 것이 이 절대자를 향하여 질서를 이루는 일종의 존재의 피라미드라는 것이다. 인간은 이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를 향하여 나아가려는 노력이 존재의 목적이며 이데.. 2020. 2. 24.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을 용기의 덕과 관련해 양적·바람직성의 기준을 통해 설명해 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선(행복)은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라고 바라봤다. 또한 이는 인간이 지닌 고유한 기능인 이성(logos)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그에게 행복은 이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을 탁월하게 잘 행동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이 ‘탁월성’(atretè)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탁월성’은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게 만드는 품성상태이며 이는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중간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중간’을 각각의 끝에서 같은 거리만큼 떨어진 것으로 산술적 비례에 따르는 중간이라고도 설명하며 탁월성의 중용에 대해 언급할 때는 ‘마땅히 그래야 할 때에, 마땅히 그래야 할 일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사람들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목.. 2020. 2. 23.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과 외적선, 운에 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그 자체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거칠게 말해 그는 ‘행복’을 ‘우리의 삶 전체에 있어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행복이 운에 의해서 주어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고려하며 솔론(Solon)의 입장을 고려한다. 솔론은 한 사람이 행복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은 그 사람의 인생이 끝난 후에나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행복한 삶을 살던 사람이 죽음에 임박해서 엄청난 불운을 맞이해 불행하게 죽으면 이는 행복한 삶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솔론의 이러한 입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행복은 전 인생(complete life)을 통한 완전한 선(complete goodness, telios)으로 자족적인 것이기.. 2020. 2. 22.
아리스토텔레스의 쾌락(hedone)과 행복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쾌락’ 개념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윤리학 작품들에서도 인간 행위와 그 행위의 최고 목적이 되는 행복에 관한 논의에 있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플라톤은 특히 에서 쾌락을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는 쾌락을 갈증이나 허기와 같이 신체의 채워지지 않은 상태가 원래의 채워진 상태로 돌아 갈 때 생기는 것으로 파악했는데 이는 쾌락을 본성의 회복으로 가는 운동과정으로 이해하는 입장이며 이렇게 이해할 경우 그 반대의 방향은 본성이 비워짐을 경험하는 것인 고통이 된다. 본성의 채워짐으로써의 쾌락은 과정이며 과정은 목적 보다 열등하다. 그렇기에 생성의 목적에 따라 좋을 수도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여긴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이 운동 과정으로 이해되는.. 2020.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