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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5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설 요약 칸트의 윤리설은 의무론적 윤리설로 알려져 있다. 이는 그가 윤리학을 선의지에 관한 탐구로 이해했기 때문이며 오직 의지의 자율에 의해 행해진 행위만이 무조건적으로 선한 것이라고 여겼다는 데 기인한다. 또한 여기서의 의지의 자율(Autonomie)이란 스스로 도덕 법칙을 형성하여 이에 따라 행위한다는 것이며 의지의 자유(Freiheit)를 전제한다. 그에게 선의지는 어떤 목표의 추구 및 달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선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선한 것이며 다른 어떤 것을 위한 수단으로서 선한 것이 아닌 무조건적으로 선한 것이었다. 칸트의 선의지에서 의지(Will)는 실천이성이었고 그는 선의지를 의무 개념과 연결시킨다. 그는 일상적으로 의무감을 느끼는 사람으로부터 선의지가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 2020. 2. 29.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과 외적선, 운에 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그 자체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거칠게 말해 그는 ‘행복’을 ‘우리의 삶 전체에 있어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행복이 운에 의해서 주어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고려하며 솔론(Solon)의 입장을 고려한다. 솔론은 한 사람이 행복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은 그 사람의 인생이 끝난 후에나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행복한 삶을 살던 사람이 죽음에 임박해서 엄청난 불운을 맞이해 불행하게 죽으면 이는 행복한 삶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솔론의 이러한 입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행복은 전 인생(complete life)을 통한 완전한 선(complete goodness, telios)으로 자족적인 것이기.. 2020. 2. 22.
아리스토텔레스의 쾌락(hedone)과 행복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쾌락’ 개념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윤리학 작품들에서도 인간 행위와 그 행위의 최고 목적이 되는 행복에 관한 논의에 있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플라톤은 특히 에서 쾌락을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는 쾌락을 갈증이나 허기와 같이 신체의 채워지지 않은 상태가 원래의 채워진 상태로 돌아 갈 때 생기는 것으로 파악했는데 이는 쾌락을 본성의 회복으로 가는 운동과정으로 이해하는 입장이며 이렇게 이해할 경우 그 반대의 방향은 본성이 비워짐을 경험하는 것인 고통이 된다. 본성의 채워짐으로써의 쾌락은 과정이며 과정은 목적 보다 열등하다. 그렇기에 생성의 목적에 따라 좋을 수도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여긴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이 운동 과정으로 이해되는.. 2020. 2. 21.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론 비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사상이 지닌 목적은 전문가와 같은 기능인의 양성이 아닌 교양인의 이상 즉, 파이데이아(paideia)를 성취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은 국가나 정의 및 방법론에 관한 서로 다른 사상을 지니고 있었기에 파이데이아의 성취에 관한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니고 있었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파이데이아를 성취한 이는 철인 통치자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선(행복)인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을 중용에 따라 탁월하게 잘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넓은 의미에서 플라톤의 교육론은 이상주의적이며 엘리트 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데 반해,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은 보다 현실적이며 완전히 국가주의적이지는 않았다. 플라톤의 교육론 먼저 플라톤의 교육 목적은 이데아의 실현에 있었으며 이데아의 실현은 한 인간에 머무.. 2020.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