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춰락/서양 옛날 및 EU춰락

아리스토텔레스의 쾌락(hedone)과 행복

by 로짘 2020. 2. 21.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쾌락개념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윤리학 작품들에서도 인간 행위와 그 행위의 최고 목적이 되는 행복에 관한 논의에 있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플라톤은 특히 <필레보스>에서 쾌락을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는 쾌락을 갈증이나 허기와 같이 신체의 채워지지 않은 상태가 원래의 채워진 상태로 돌아 갈 때 생기는 것으로 파악했는데 이는 쾌락을 본성의 회복으로 가는 운동과정으로 이해하는 입장이며 이렇게 이해할 경우 그 반대의 방향은 본성이 비워짐을 경험하는 것인 고통이 된다. 본성의 채워짐으로써의 쾌락은 과정이며 과정은 목적 보다 열등하다. 그렇기에 생성의 목적에 따라 좋을 수도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여긴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이 운동 과정으로 이해되는 하나의 생성이 아니라 본성에 따른 품성 상태의 활동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쾌락은 운동이 아니라 활동인 것이다. 말하자면, 그에게 쾌락은 성취하지 못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운동 과정이거나 그 목적을 이루면 끝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행위(활동)에 가깝다. 무엇인가를 바라보는(seeing) 행위는 바라보는 활동이 지속되는 한 그 본래의 목적이 완성되어 있고 또한 지속된다. 이러한 방향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쾌락은 없음이 채워지면서 끝나는 운동 과정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의 전체로서 온전히 지속하는 활동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공부를 증기는 사람이 공부를 더 잘하듯 활동의 고유한 쾌락이 그 활동을 증진시키며 결국 그 활동을 완성한다고 주장한다.

 

쾌락이 운동이 아니라 활동이라는 입장은 쾌락이 목적이 아닌 하나의 대상이라는 입장으로 바라 볼 수 있다. 쾌락이 목적이라면 이는 궁극적인 선이 될 수 있을 것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적어도 쾌락이 그러한 선차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활동에 기초한 쾌락이 좋은 쾌락이며 나쁜 활동에 기초한 쾌락은 나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훌륭한 활동에 기초한 좋은 쾌락을 고려할 때 모든 쾌락은 선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쾌락도 있기에 쾌락 자체를 궁극적인 선으로 고려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육체적인 쾌락의 영역을 벗어나 고려할 경우 쾌락은 행복을 위한 활동을 완성시켜주는 것으로 최고선의 자리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쾌락과 행복을 연결시키는 고리는 그것이 방해 받지 않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는 행복우리의 삶 전체에 있어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라고 규정하며 이는 그 어떤 방해도 없이 자신의 고유한 활동을 온전히 발휘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행복은 전 인생을 통해 부족함이 없고 자족적인 완전한 선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행복은 쾌락을 담지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행복을 성취하는데 있어 쾌락 역시 방해받지 않는 활동이어야 하며 그래서 행복과 쾌락은 내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활동은 쾌락을 동반할수록 완성되고 쾌락이 더 동반하는 활동일수록 그 삶은 더 즐거운 것이 될 것이며 이로써 쾌락이 행복한 삶의 필수적인 부분을 구성하고 있음이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활동의 고유한 쾌락이 활동을 완성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각각의 활동을 그것의 고유한 쾌락이 완성하듯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삶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 바로 쾌락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쾌락은 삶을 완성시키는 것이며 행복을 완성시킨다고 볼 수 있다.

 

행복을 덕에 따른 행위라는 것은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볼 때, 문제는 올바른 행동이라도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불쾌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얻는 육상선수의 예를 통해 설명한다. 그는 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얻는 사람은 월계관을 목표로 올바르게 행동하는(act rightly) 사람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월계관은 행복으로 올림픽에서의 바른 행동은 덕스러운 행동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올림픽 육상 경기에 참석은 했으나 육상 트랙을 반대로 뛰는 등의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고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쾌락을 느끼지 못한다면 월계관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월계관을 얻을 자격조차 없을 것이다. 유사하게 행복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기꺼이 올바른 행동인 덕스러운 행동을 하고 싶어 할 것이고 이 행위를 통해 쾌락을 느낄 것이다. 만약 그러한 올바른 행동에 쾌락을 느끼지 않아서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행복이란 월계관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얻을 자격도 없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덕스러운 올바른 행동에 쾌락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을 성취할 자격이 없다는 방향의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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