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춰락/서양 옛날 및 EU춰락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론 비교.

by 로짘 2020. 2. 20.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사상이 지닌 목적은 전문가와 같은 기능인의 양성이 아닌 교양인의 이상 즉, 파이데이아(paideia)를 성취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은 국가나 정의 및 방법론에 관한 서로 다른 사상을 지니고 있었기에 파이데이아의 성취에 관한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니고 있었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파이데이아를 성취한 이는 철인 통치자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선(행복)인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을 중용에 따라 탁월하게 잘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넓은 의미에서 플라톤의 교육론은 이상주의적이며 엘리트 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데 반해,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은 보다 현실적이며 완전히 국가주의적이지는 않았다.

 

  • 플라톤의 교육론

먼저 플라톤의 교육 목적은 이데아의 실현에 있었으며 이데아의 실현은 한 인간에 머무르지 않고 이상국가를 실현에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는 이상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단일성 혹은 통일성이 성취되어야 한다고 여겼으며 이는 폴리스의 시민 각자가 자신의 직분을 배정받고서 자신의 직분을 최대한 잘 발휘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여겼다. 플라톤은 국가의 단일성 및 통일성을 실현시키기 위해 <국가> 4권에서는 영혼의 정의와 국가의 정의가 일치되어야 한다고 고려했고 이러한 정의관은 당대의 전통적인 정의관이었던 응징적 정의와는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의 이상국가는 엄격한 법률에 의해 통치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받은 교양인들이 지닌 이성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였다. 그렇기에 그는 교육을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교육 목적을 지닌 플라톤에게 교육 대상은 국가를 통치하는 소수의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그의 교육론을 철인 교육 혹은 엘리트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혈통이나 신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육에 의해 시민들을 분류하려고 했다. 그리고 국가를 구성하는 세 계급의 인간을 두었는데 제 1 계급은 Gold의 성격을 지닌 통치자였고 제 2계급은 Silver의 성격을 가진 수호자였으며 제 3계급은 lead()의 성격을 지닌 사람으로 생산자였다. 플라톤은 통치자는 지혜의 덕을 수호자는 용기의 덕을 그리고 생산자는 절제의 덕을 잘 발휘해야 하며 이러한 덕이 잘 실현될 때, 정의의 덕이 성취된다고 생각했었다.

 

플라톤은 국가의 일원인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를 원했고 이는 개인적인 완성에 그치지 않고 지혜와 정치적 지도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국가의 최고 통치자는 철학자가 되어야 된다고 여겼고 철인 통치설을 강조했는데 이러한 점에서 그의 교육의 내용은 단계별로 철인 통치자를 양성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유아기(6세 이전)에는 동화와 신화를 6세에서 18세까지는 체조와 음악을 그리고 18세부터 20세까지는 체육과 군사를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20세에 수호자가 될 사람들이 결정되고 이후 철인이 될 사람은 이후 산수, 음악, 기하, 천문학을 공부하며 변증술을 연마하고 철학을 가르치며 국가의 정사를 실제로 경험하고 50세에 철인으로써 정권을 잡는 교육을 제시한다.

 

플라톤이 말하는 학습은 외부에서 지식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부에 심겨져 있는 본성을 깨닫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감각을 통한 확인은 학습에 있어서 필요한 일이지만 개념적 이해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의 교육 방식은 혈통이나 신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육에 의해 시민들을 분류하려고 했다. 그렇기에 그의 교육은 선택된 극소수의 지적 엘리트를 대상으로 했다. 따라서 그는 교육에서 우생학적인 감독이 필요하며, 건강치 못한 남녀는 생산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 플라톤의 교육은 천재주의, 귀족주의이며 도덕존중 교육이며 국가주의적인 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론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방법론, 정의론 및 국가관에 있어서 다른 입장을 지니고 있으며 그렇기에 교육론 역시 차이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방법론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은 이데아와 현상계의 구분을 제 3인간 논증 등을 통해 비판한 바 있으며 선의 이데아에 대해서도 선의 세계가 수학적 정답처럼 규정 가능한 것은 아니며 질료(개별자) 없는 형상(이데아) 역시 존재할 수 없음을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정의론과 국가관에 있어서도 둘은 차이가 나는데, 플라톤은 국가를 각자의 필요에 의해 형성된 것이고 각자가 각자에게 적합한 직분을 부여 받고 이를 잘 수행할 경우, 국가의 정의가 수립된다고 봤었다. 또한 그의 정의관은 당대 전통적인 응징주의적 정의관을 탈피하고 교육 받은 교양인들에 의한 자발적인 실천을 고려했기 때문에 법률에 의한 강제나 응징 보다는 교육을 중요시 했었다. 다시 말해, 플라톤의 국가관과 정의관은 다소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를 사람들의 사회성에 기인한 공동선을 추구하는 자족적인 결사체로 고려했다. 또한 전통적 정의관인 응징주의적 정의관을 한 단계 발전시켜 각자가 자신의 것을 갖고 행함이라는 공적주의 정의관을 발전시켰다. 그는 국가가 비례에 따른 되갚음에 의해 존립될 수 있다는 분배적 정의를 고려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방법론이나 국가관 및 정의관에 있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은 플라톤의 입장 보다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그의 교육론에서의 차이로 이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 목적은 행복한 사람을 만들고자 함이며 행복을 최고의 목적으로 하는 개인의 완성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는 개인을 완성시키는 요건으로 자연, 습관 그리고 이성을 들고 있다. 여기서 (1) 자연적 요소는 인간의 질료적 기체로서의 가변성을 말하며 (2) 습관은 훈련에 의해 선하게 또는 악하게도 습관지어 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3) 이성은 인간을 인간답게 완성하는 근본적인 요소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세 가지가 조화되어 그의 교육 목적이 달성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그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인간의 선(행복)인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라고 말했으며 이 영혼의 활동을 중용에 따라 탁월하게 잘 행동해야 된다고 말했다. (이는 인간의 고유한 기능인 이성(logos)에 따른 영혼의 활동을 탁월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행복은 이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을 탁월하게 잘 행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탁월성은 이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게 만드는 품성 상태이며 이는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간이라고 말한다. 중간이 그의 중용인데 이는 산술적 비례에 따라 양 끝에서 같은 거리 만큼 떨어진 정도를 말하기도 하며 마땅히 그래야 할 때에, 마땅히 그래야 할 일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사람들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목적을 위해서,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으로 감정을 갖는 것이 중간이자 최선이며 바로 그런 것이 탁월성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중간을 벗어나서 지나치거나 모자라게 되면 이는 악덕이며 중용은 두 악덕의 중간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만용과 비겁의 중용은 용감이고 방존과 무감각의 중용은 절제이며 낭비와 인색의 중용은 관대가 된다.) 그는 이를 위해 지적 탁월성과 인격의 탁월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정의하였으며 이 두 탁월성은 후천적으로 획득되어지고 습관화와 교수활동을 통해 획득되어 진다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 형성된 습관화가 쾌락과 고통, 기쁨과 괴로움 등을 적절하게 통제하도록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습관화의 단계를 넘어서면 이성적인 사고의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 때 비로소 교수활동이 요구된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 목적은 플라톤과 같이 이상국가의 통치자인 철인 군주를 양성하는 최종 목적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그는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고 보지는 않았고 인간은 선천적으로 자유인과 노예 혹은 자유가 없는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교육의 대상은 자유인만을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교육은 자유인을 위한 교육이고 그 교육은 시민성의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자유시민성을 위한 교육의 내용은 아동교육에 있어서도 발달 단계에 맞춘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보았고 점차 습관화의 단계를 넘어 이성적인 사고의 단계에 들어서는 수학, , 수사학, 윤리학, 정치학 등의 교육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그의 교육은 신체적인 발육에서, 습관형성으로 마지막에는 이성의 단련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지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은 자유인을 위한 것이었고 국가에 의한 교육을 고려했지만 플라톤과 달리 국가가 개인의 교육을 일생 동안 감독하거나 국가의 목적에 개인을 종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인간 스스로가 사회적 삶의 규범이 되는 덕을 계발하여 행복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부각되는 교육의 과제는 이성을 통한 덕의 계발에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관은 국가주의적이지는 않았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은 플라톤과 달리 보다 현실주의에 기반을 하고 있으며 국가주의적이지 않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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