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춰락/서양 옛날 및 EU춰락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과 외적선, 운에 관해

by 로짘 2020. 2. 22.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그 자체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거칠게 말해 그는 행복우리의 삶 전체에 있어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행복이 운에 의해서 주어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고려하며 솔론(Solon)의 입장을 고려한다. 솔론은 한 사람이 행복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은 그 사람의 인생이 끝난 후에나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행복한 삶을 살던 사람이 죽음에 임박해서 엄청난 불운을 맞이해 불행하게 죽으면 이는 행복한 삶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솔론의 이러한 입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행복은 전 인생(complete life)을 통한 완전한 선(complete goodness, telios)으로 자족적인 것이기 때문에 결여된 것이 없는 포괄적(comprehensive)인 것이어야 한다고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행복이 포괄적이라면 당연히 그 요소에는 운과 같은 외적 선(external good)이 포함된다. 행복은 궁극의 선이어야 함에도 만약 이것이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면 이는 궁극의 선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이러한 외적 선도 포함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을 따르면 그 사람이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은지는 그 사람이 죽은 이후의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된다. 하지만 행복이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면 이는 우연적이고 불안정한 것이며 우리가 추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답은 그가 솔론의 입장을 대체적으로 따르지만 완전히 따르지는 않았다는 데서 살펴볼 수 있다. 솔론은 행복해지기 위해 앞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불운에 대해서 융통성 있게 대처해야 한다고 여겼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나의 행복은 내 안에 있으며 따라서 내 통제 하에 있는 것들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므로 행복이 전적으로 우리의 통제 밖에 놓인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솔론의 입장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에게 행복을 구성하는 외적선은 우리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 어윈과 같은 학자는 행복의 구성요소가 되는 외적 선의 역할을 두 가지로 해석한다. 하나는 덕스러운 행위의 도구로서의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행복의 기여자로서의 역할이다. 먼저 외적 선은 덕이 있는 행동을 위한 수단이 되고 덕스러운 행위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외적 선을 적절히 활용할 것이다. 반면에 어윈의 해석에 따르면 모든 외적 선들이 덕스러운 행위에 사용되기 때문에 선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관대한 사람은 명예를 추구할 때 그것이 덕이 있는 행동을 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좋은 외적 선이기 때문에 덕의 적절한 보상으로서 추구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외적 선은 행복에 필요한 것이며 이 중 몇몇은 그 자체로도 추구할만한 선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정리해서, 어윈의 행복의 구성 요소가 되는 외적 선은 모두 덕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외적 선들이 덕과 격리되어 있다면 이는 악용될 여지가 있으므로 행복을 이루는 요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을 따른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의 요소로 받아들이는 외적 선은 주체의 통제 하에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주체의 덕이 있는 행동과 관련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그렇다면 행운과 불운은 행복을 결정하는 외적 선의 요소로 포함될 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해복의 영속성을 말하며 행복한 사람은 비참해 질 수 없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덕이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불운한 상황에서 덜 행복할 수는 있지만 행복하지 않은 수는 없다. 반대로 운이 좋지만 덕이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는 차이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행복은 불운한 상황에 취약하나 이러한 운이 행복을 결정하지 않고 행복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는 그 주체가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을 하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솔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운과 같은 외적인 요소들에 있어 취약함을 인정하나 이는 행복에 있어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니며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은 덕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고 이 덕은 우리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통제 하에 놓여있기 때문에 행복은 덕에 의해 담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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