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춰락/서양 옛날 및 EU춰락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신관에 대해.

by 로짘 2020. 2. 24.

플라톤의 신.

 

플라톤의 신관은 이신론(理神論)적인 신관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삶의 내적 목표가 신을 닮으려고 하는데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여기서의 신이란 정신적 영역을 지키는 존재로서 이러한 정신적, 신적 영역에 참여하는 것이 인간존재의 내적인 목표라는 것이다. 특히 그의 저서인 <법률>에서 신은 최고의 것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설명된다. 신은 이데아계와 현상계를 정립하기 위한 존재로 이해된다. 또한 신은 무에서부터의 창조자가 아닌 태초의 무질서에서 질서 있고 계획된 우주를 산출해낸 존재라고 말한다. 결국 만물은 이러한 절대자를 위하여 존재하고 모든 것이 이 절대자를 향하여 질서를 이루는 일종의 존재의 피라미드라는 것이다. 인간은 이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를 향하여 나아가려는 노력이 존재의 목적이며 이데아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고 이 이데아 안에서만 인간은 온전한 쉼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신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부동의 원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를 가능태적 존재인 질료에서 현실태적인 존재인 형상으로의 이행으로 설명했다. 또한 그에게 운동과 변화는 외적인 원인이나 자극이 요구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이 있다면 움직이게 하는 것과 움직여지는 것이 존재하게 된다. 이때, 모든 가능태적인 존재인 질료는 운동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러한 운동의 궁극적인 원인이 무엇인가를 물을 수 있다. 이러한 운동의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최초의 운동의 원인이 존재하게 될 것인데 이러한 최초의 운동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여지게 하는 자, 즉 부동의 원동자가 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동의 원동자가 순수한 현실태라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가능태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면 이는 변화의 과정 속에 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가능적인 것들(질료)은 현실적인 것들에 의해 운동하게 되며 순수하게 현실적인 것인 부동의 원동자는 운동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는 질료뿐만 아니라 형상의 측면에서도 영원하며 운동은 영원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와 그의 신에 대한 개념은 서로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그는 부동의 원동자를 설명함에 있어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게 하는 자를 위한 조건을 생각한다. 그는 하나의 사고 과정은 무한한 후퇴가 불가능한 궁극적인 원인에 도달해야 한다는 인과의 원리와 현실태는 항상 가능태보다 먼저 있는 것이기에 현실적인 것은 다른 현실적인 것에 의해서만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서 운동을 하게 하는 자인 신의 개념에 도달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이 아무런 가능태도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서의 현실태이며 모든 생성에 있어 작용인이자 형상인이고 목적인이라는 점을 고려한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신을 nous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신은 사유에 종사하고 있고 신의 영원한 사유의 유일한 대상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사유가 변화를 겪는 대상에 적용된다면 사유 역시 변화해야 하기 때문에 신은 오직 자기 자신을 사유하는 사유의 사유’(noesis noeseos)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점에서 신은 유일하며 충만하고 자족적인 완전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은 가장 현실적인 존재이고, 사고하는 정신이며, 복된 생명이다라고 설명한다.

 

플라톤의 신에 대한 관점은 이 세상에 초월적인 신이 존재한다고 여기는 유신론적 입장으로 볼 수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는 자연과 세계 곳곳에 신이 깃들여져 있다는 범신론적인 입장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현실계 안에 존재하면서도 또한 세계를 초월하여 자족하는 존재로 생각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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