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춰락/율뤼확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설 요약

by 로짘 2020. 2. 29.

칸트의 윤리설은 의무론적 윤리설로 알려져 있다. 이는 그가 윤리학을 선의지에 관한 탐구로 이해했기 때문이며 오직 의지의 자율에 의해 행해진 행위만이 무조건적으로 선한 것이라고 여겼다는 데 기인한다. 또한 여기서의 의지의 자율(Autonomie)이란 스스로 도덕 법칙을 형성하여 이에 따라 행위한다는 것이며 의지의 자유(Freiheit)를 전제한다. 그에게 선의지는 어떤 목표의 추구 및 달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선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선한 것이며 다른 어떤 것을 위한 수단으로서 선한 것이 아닌 무조건적으로 선한 것이었다.

 

칸트의 선의지에서 의지(Will)는 실천이성이었고 그는 선의지를 의무 개념과 연결시킨다. 그는 일상적으로 의무감을 느끼는 사람으로부터 선의지가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도덕적이라고 불릴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오직 의무로부터의욕되고 행해진 행위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자기 이익이나 자신의 성향 혹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에서 행해진 것이 아닌 오직 내적인 의무감으로부터 행해진 행위만이 도덕적으로 불릴 수 있고 무조건적으로 선한선의지에 따른 행위일 수 있는 것이다.

 

칸트는 내적 의무감의 근거에 놓여있는 실천 법칙을 명법’(Imperativ)이라고 불렀으며 이 명법을 정언명법과 가언 명법으로 구별한다. 그리고 정언 명법은 행위의 수행이 곧 목표 자체임을 나타내는 형식으로 그 자체로서의 선을 표현하는 것이며 가언 명법은 어떤 다른 목표를 추구하여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선을 명령하는 명법이라고 설명한다. 칸트는 정언 명법에 속하는 실천 원리를 도덕성의 명법이라고 고려한다. 그래서 정언 명법에 속하는 도덕성의 명법은 정의상 어떤 목표나 의도의 제약도 받지 않으며 행위의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행위 자체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명령하는 것이 된다.

 

칸트의 정언 명법은 불공평이나 불공정을 배제하기 위해 도입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너의 준칙이 보편 법칙이 될 것을 그 준칙을 통하여 네가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 그러한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고 말하며 이는 한 개인이 선택한 도덕 규칙으로서의 준칙(Maxime)이 보편화 가능해야만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행위의 준칙이 보편화가능하지 않다면 그 준칙에 따른 행위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것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동정심에 의해 다른 사람을 도왔다고 해보자. 이 사람의 다른 사람을 도운 준칙행위자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옳다는 준칙을 지닐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해하려는 욕구를 지닌 행위를 할 수도 있으며 이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욕구를 따르라는 준칙은 보편화 가능하지 않고 그렇기에 욕구를 따르라는 준칙을 따른 행위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칸트는 너 자신의 인격에 있어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단순히 수단으로써만 사용하지 말고 동시에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행위하라고 말한다. 이러한 언급은 그의 준칙의 보편성에 대한 생각과도 일치한다. 다시 말해, 준칙의 보편성에 따르면 공동체 안에서 나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고려해 나 자신만을 위한 예외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는 다른 구성원들을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행위자로 존중하고 그들을 나의 목적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렇게 칸트는 우리의 의무감에 근거한 도덕 법칙을 정언 명법에 속하는 것이자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하며 그 자체가 목적인 그러한 준칙의 제시를 시도한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정언 명법으로 제시한 도덕 법칙들이 어떻게 우리 인간을 구속하는 도덕 법칙일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제시한다.

 

칸트는 정언 명법은 우리의 의지가 자율적으로 선택한 도덕 법칙이라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정언 명법은 어떤 외부적 존재나 절대자가 형성하여 인간들에게 이를 따르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가 스스로 형성하고 자기 자신에게 명령한 법칙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정언 명법의 모든 정식들은 의지의 자율(autonomie)을 이미 전제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그리고 그의 모든 정식은 ‘~인 듯이 행위하라고 명령함으로써 이것이 행위자 자신의 결정임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의지의 자율과 의지의 자유에 관해: 또한 칸트는 의지의 자율을 확보하고 난 후 이를 다시 의지의 자유(Freiheit)와 연결시킨다. 의지가 자율적이라는 말은 스스로 도덕 법칙을 형성하며 이에 따라 행위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자율이 성립하기 위해서 의지는 자유롭지 않으면 안 된다. 의지가 자유로워야지만 스스로 법칙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의지의 자유는 도덕 법칙의 성립 근거이며 도덕 법칙은 자유의 인식 근거라는 것이다. 이렇게 의지가 자유롭기 때문에 도덕 법칙이 성립하며 또한 도덕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가 자유로움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정리해서 칸트의 도덕 법칙은 그 자체로 행위의 목적이 되는 정언 명법에 속하는 것이며 이는 우리의 의지가 자율적으로 선택한 도덕 법칙이다. 이러한 정언 명법에 따른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자율적 의무로부터 행해진 것으로 그 자체가 목적이며 도덕적일 수 있다. , 그 자신이 언급한대로 무조건적으로 선한 선의지에 따른 행위일 수 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그의 윤리학은 의무론적 윤리학으로 해석될 수 있다.

 

참고> 영혼 불멸성과 신존재에 대해

 

칸트에게 최고선(das höchste Gut)은 최상선(das oberste Gut)과 완전선(das vollendete Gut)을 모두 갖춘 상태이다. 최상선은 인간의 의지와 도덕 법칙이 완전히 일치하는 상태로 자신의 의지가 무엇을 의욕하건 간에 그것이 도덕 법칙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칸트는 이러한 상태가 일종의 도덕적 이상이기는 하지만 이에 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한편으로는 이성적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감성적이기에 언제나 욕구나 경향성에 따라 행위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상선을 향한 끊임없는 추구는 단절되어서는 안 되는 일종의 의무이며 이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우리 인간은 인격성은 죽음에 이르러 소멸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영혼불멸성을 주장한다. 다시 말해, 최상선의 추구를 위해 영혼불멸성이 전제되는 것이다.

 

완전선은 도덕과 행복이 일치하는 상태이다. 이는 도덕적인 사람이 그에 대한 보상으로 행복을 누리는 것이자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이 그에 대한 벌로 불행을 겪는 상태를 말한다. 완전선은 현실적으로 실현이 어려우며 인간의 능력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덕과 행복의 일치를 보장해 주는 신의 존재를 전제한다. 칸트가 생각하는 신은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신이라기 보다 도덕의 성립 근거로서 요청된 이성적 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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