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판단에 대한 인지주의(cognitivism)에 따르면 도덕적 판단은 사실(fact)에 대한 것이며 이에 관한 진술은 참 혹은 거짓의 진리값을 지닐 수 있다. 인지주의는 도덕적 속성이 우리의 마음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기는 도덕적 실재론과 함께 주장되기도 한다. 실재론적 인지주의자들은 우리의 도덕 판단과 이에 관한 진술은 이 세상에 실재하는 도덕적 사실에 대한 기술이기 때문에 그것의 참 혹은 거짓 여부를 확정지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비인지주의(non-cognitivism)는 도덕적 진술은 진리값을 지닐 수 없으며 도덕적 판단은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비인지주의는 도덕적 속성이 우리 마음에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반실재론으로 주로 분류되며 대표적으로는 정서주의(emotivism)와 규정주의(prescriptivism)가 있다.
(1) 에이어의 정서주의
정서주의에 따르면 도덕적 판단은 객관적인 실재인 사실에 관한 것이 아니라 행위자가 느낀 감정적 동의를 표현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과 태도에 동조할 것을 권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덕적 판단은 진리값을 지니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입장을 지닌 정서주의자로는 에이어(A.J. Ayer)가 있다.
에이어는 도덕적 판단에 관한 진술이 검증원리에 의해 그 진리값을 알 수 없는 진술이므로 인지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도덕적 판단에 관한 진술은 단지 감정의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에이어는 논리실증주의자였고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문장이 인지적으로 유의미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그것이 검증가능할 경우라고 여겼다. 그래서 인지적으로 유의미한 문장은 첫째로, 동어반복적인 문장 혹은 정의에 의해 참인 진술이다. 그리고 둘째로,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진술이 인지적으로 유의미하다고 여겼다. 그는 도덕적 판단에 관한 진술은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도덕적 문장은 인지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고 여겼다.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그는 도덕적 판단에 관한 진술이 사실에 관한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정서주의를 주장한다. 그는 감정의 보고와 감정의 표현을 구별하는데 ‘X는 선이다’라는 문장에 대한 감정의 보고는 ‘나는 X에 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와 같은 것이며 이는 참 혹은 거짓의 진리값을 지닐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의 표현은 ‘X 만세’와 같은 것으로 감정의 표현에는 참 혹은 거짓의 진리값을 부여할 수 있는 사실에 관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에이어는 도덕적 판단에 관한 진술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에이어의 정서주의는 기본적으로 논리실증주의자들의 검증원리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도덕은 주관적인 감정 표현 보다 보편적인 것으로 고려되는데 그의 정서주의는 도덕을 보편적이지 않은 주관적인 정서적 표현으로 환원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 받기도 한다.
(2) 헤어의 규정주의(Prescriptivism)
규정주의는 도덕적 진술이 사실을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도덕적 행위 주체에게 타당하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규정을 진술하는 것이며 도덕적 판단은 궁극적으로 결단(decision)에 의존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을 주장하는 이로는 헤어(R.M. Hare)가 있다.
헤어는 도덕적 진술이 사실이 아닌 도덕적 행위 주체에게 타당하게 적용될 보편적인 규정을 말하는 것이라고 여겼으며 다음의 네 가지 특징을 지닌다고 여겼다. 첫째로, 도덕적 판단은 규정적이다. 둘째로, 도덕적 판단도 추론적 관계를 지닌다. 셋째로 도덕적 판단은 보편화 가능하다. 넷째로, 도덕적 판단 혹은 추론은 원리를 지닌다.
먼저 규정성부터 살펴보자. 헤어는 도덕적 진술이 규정적 의미를 지니나 부분적으로 기술적(descriptive) 의미 역시 지닌다고 보았다. 규정적 의미(prescriptive meaning)는 명령문과 관련 있으며, 어떤 진술이 규정적이라는 것은 그 진술이 순수하게 사실에 관한 진술과 함께 적어도 하나의 명령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술적인 의미(descriptive meaning)는 진리조건(truth-condition)과 관련이 있으며, 어떤 진술이 기술적이라는 것은 그 진술의 사실에 대한 올바른 적용조건인 진리조건이 그것의 의미를 정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덕적 진술인 ‘사람은 타인을 돕고 살아야 한다’는 문장은 ‘타인을 도와라’라는 명령문과 관련이 되며 ‘타인을 돕는 것은 즐겁다’는 기술적 함축 역시 지닌다.
둘째로 그는 도덕적 판단은 추론적 관계를 지닌다고 설명한다. 그는 에이어와 같은 정서주의자들이 도덕적 판단에 관한 진술은 인지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고 주장한데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지닌다. 그리고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명령문과 관련된 규정적 의미를 지닌 도덕적 진술도 추론적으로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적 판단의 추론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행위주체에게 타당하게 적용될 보편적 규정에 관한 것이 도덕적 진술이라는 그의 입장을 뒷받침한다. 그는 다음의 두 가지 명제를 기본으로 삼는다.
(1) 전제들 가운데 적어도 하나의 명령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한 그로부터 명령적 결론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2) 어떠한 판단도 그것이 무엇인가 명령하는 내용을 포함하지 않을 경우에는 도덕 판단이 아니다.
첫 번째 명제는, “전제에 없는 것을 결론 속에 끌여들일 수 없다”는 일반적인 추론 원칙을 시사한다. 그리고 둘째 명제는 도덕적 진술이 규정적 의미를 지닌다는 그의 입장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헤어는 도덕적 판단에 관한 이론이 보편화 가능해야 한다고 여긴다. 도덕적 판단을 하는데 있어 동일한 상황에 동일한 원칙을 지녔음에도 그 판단에 차이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라도 도덕적 이론은 보편화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넷째로 그는 도덕적 판단의 원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도덕적 진술은 추론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으며 이러한 진술이 표현하는 도덕적 판단은 가언적이기 보다 보편적인 다시 말해 정언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결론을 이끌어낸 추론의 끝에 있는 대전제들은 이를 도덕원리로서 선택하는 행위자의 주체적인 결단에 의하여 주어진 원리여야 하며 이러한 원리가 ‘나의 원리’가 된다고 설명한다.
헤어의 규정주의는 도덕적 진술들의 대전제가 되는 ‘나의 원리’를 정당화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에 직면한다. 그래서 그의 규정주의는 지나치게 허용적이어서 전형적으로 비도덕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행위를 허용하며 사소한 판단을 도덕 판단으로 간주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역시 공격 받는다.
(참고. 도덕적 비인지주의는 도덕적 반실재론으로도 여겨집니다. 도덕적 실재론과 반실재론은 여기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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