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자연주의 윤리학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대한 이해는 자연에 대한 그의 독특한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출발한다. 스피노자의 철학에 있어 최대 쟁점은 무한한 속성들로 구성된, 유일하고 절대적으로 무한한 실체인 신만이 실존함을 보이는 것이다. 이때의 신은 철저하게 자연화된 신으로서 신은 실체이고 곧 자연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의 자연은 무언가를 무한히 산출하는 능산적 자연이며 이를 통해 산출된 소산적 자연을 포함하고 있다. 스피노자에게 존재하는 것은 실체와 신적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 도출되는 양태뿐이다. 자연은 하나의 법칙에 의해 체계를 이루고 있으며 자연을 초월한 어떤 실재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은 스스로 생성, 소명, 변화하고 운동할 뿐이다. 세계는 합리적으로 질서가 잡혀있고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 가능하다.
이와 같은 스피노자의 자연관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 있어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먼저,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이해되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자 양태이다. 인간은 다른 유한한 모든 양태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물들과 인과관계를 맺고 있어서 끊임없이 다른 사물에 의해 작용을 겪고 또한 그것들에 작용을 가한다. 인간의 정신 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일체의 자연적 규정들로부터 벗어나있지 않다. 이점에서 인간이 자연에 구속되지 않고 자기가 의지하는 대로 어떤 일을 실행할 수 있다고 하는 자유의지는 부정된다. 즉, 자유로운 정신이 의지를 갖고 감정과 신체 그리고 신체에 의한 행위를 통제해야 한다는 윤리학의 기본적인 전제가 부정된다는 것이다. 대신에 스피노자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존재의 역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며 또한 수동적 예속을 벗어나 이를 능동적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자연 개념은 실체, 사유와 연장 등의 개념을 통해 이해된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적 색채가 강하다고 할 수 있으나 경험주의적 의미로 이해되는 ‘자연주의’가 아닌 넓은 의미로 ‘자연주의’를 받아들일 때, 그의 입장은 자연주의 윤리학이라고 고려될 수 있다. (1) 먼저 스피노자는 자연 외부의 신이나 초월적인 도덕적 가치의 세계를 상정하지 않고 그의 독특한 자연 개념을 통해 윤리를 이야기하였다는 방향에서 자연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2) 윤리적 행위자로서의 인간 역시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존재로 이해하며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지점에까지 나아간 것을 봐서도 알 수 있듯이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자연주의적이다. 우리가 지닌 자유의지는 단지 자신의 욕구가 자연적 인과와 연쇄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몰인식에 기인할 뿐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3) 스피노자의 윤리학이 지향하는 좋음과 나쁨의 의미 역시 자연(적 사태)과의 관련성을 통해서 이해된다는 점에서 자연주의적이다. 스피노자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자연적 규정과 단절하고 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규정들의 필연성을 적합하게 인식하고 자신의 실존 및 행위역량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이를 조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이를 능동성과 자유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여기서 자유는 진리에 대한 인식과 결부되어 이해되며 자연적 필연과 상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윤리학의 자연주의적 성격을 찾아 볼 수 있다.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적 윤리학
라이프니츠는 자유와 도덕의 가능성과 같은 윤리학적 문제들을 실체 개념을 통해 해명하는 형이상학적 접근법을 취한다. (실체 개념을 통해 윤리학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스피노자와 유사한 점을 지니나 스피노자는 자연주의 윤리설이라고 볼 수 있는 반면 라이프니츠는 형이상학적 윤리설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윤리학을 살펴 보기 위해 먼저 그의 실체 개념인 모나드론을 먼저 살펴보고 이로부터 도덕의 가능성과 자유의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는지를 살펴보자.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실체는 분할불가능하고 단순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하나’를 뜻하는 ‘모나드’(monad)를 실체로 제시한다. 모나드의 중요한 특성은 자족성이다. 이에 따라 모나드는 존재의 근거를 스스로 갖기 때문에 다른 존재자로부터 어떤 영향이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즉, 모나드들은 상호적인 인과관계를 맺거나 정보교환을 위한 행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모나드는 자신이 수행하는 지각의 모든 내용, 즉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실현될 모든 내용을 이미 자신 안에 잠재적으로 본유하고 있다. 이런 잠재적인 내용들은 모나드의 본성인 욕구를 통해 구체적인 역사적 과정 속에서 현실화된다. 이와 같은 모나드로 구성된 세계는 예정조화설을 통해 이해된다. 이에 따르면, 경험적으로 관찰되는 인과관계는 예정조화에 의한 것이다. (예를 들어, 빨간 당구공을 쳐서 흰 당구공이 움직였을 경우, 인과율에 의한 설명에 따르면 빨간 당구공이 흰 당구공이 움직인 원인이 되고 흰 당구공의 움직임이 그 결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예정조화설에 따르면 빨간 당구공은 흰 당구공을 향하도록 예정되어 있었으며, 흰 당구공은 빨간 당구공이 오는 순간 운동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이 점에서 빨간 당구공은 흰 당구공과 인과적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이렇게 세계의 모든 사건은 사건이 그렇게 진행되도록 이미 예정된 수순에 따라 이루어지며, 모든 인과적 관계는 예정조화의 겉보기 현상일 뿐이다.
한편으로 이와 같은 모나드들은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신의 지성 안에서 가능적 존재로서의 개별적 모나드를 구성하고 가능적 모나드들의 집합으로서 가능적 세계를 구성한 뒤 무수히 많은 가능한 세계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현실세계로 가져오는 방식으로 세계를 창조했다. 논리적으로 모순되지 않는 무한히 많은 세계 중에서 신은 가장 완전하고 질서는 단순하며 진/선/미가 가장 풍부한 최선의 세계를 선택한다. 이 세계에는 불완전한 것이 포함되어 있을지라도 가장 완전하며 진/선/미가 가장 풍부한 세계인 것이다.
이와 같은 실체론을 바탕으로 한 라이프니츠 윤리학의 과제는 도덕적 선의 의미와 이성적 존재자로서 인간이 행위를 할 때 따라야 할 도덕법칙을 규정하며, 도덕법칙의 실현 가능성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자유의지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먼저, 라이프니츠에게 있어 도덕은 최고의 이성적 존재자인 신이 창조한 도덕법칙을 통해 이해된다. 신이 실체를 창조할 때, 신은 이성을 가지지 않은 실체와 이성을 가진 실체로 나누어 창조하였고, 이들에게 각각 자연법칙과 도덕법칙을 부여했다. 여기서 자연법칙은 신에 의해 타율적으로 부여되는 반면, 도덕법칙은 자율적으로 부여되며 이성적 존재자들은 이를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정조화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이성적 존재자들의 자유는 어떻게 논의될 수 있는가?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의 예정조화설에 따르면, 신은 그의 정신 속에서 모든 모나드들의 미래행위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예정하였다. 그러나 신의 섭리는 모나드의 내적 상태의 변화까지 결정한 것은 아니다. 신의 예정이 모나드의 내적 상태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변화하는 모나드들의 내적 상태를 신이 예견함으로써 서로 조화를 이루는 모나드들의 집합을 구성하도록 세계를 창조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라이프니츠에게 도덕의 영역은 자연의 영역과 분리되어 있으며 자연저인 것들과 다른 법칙에 의해 운행되는 신에 의한 ‘은총의 왕국’이다. 그의 윤리설의 목적은 기독교 윤리를 철학적으로 입증하는데 있었으며 선과 악의 개념 또한 ‘존재의 결핍’이나 ‘죄’와 같은 개념을 통해 설명되었다는 점은 그가 도덕을 자연을 통해 이해하기 보다는 신학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여 이해하고자 했음을 잘 보여준다.
이제 스피노자의 입장과 비교해서 이를 살펴보자.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세계가 이성적 질서에 의해 지배된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합리론자였으며, 실체 개념을 통해 도덕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그의 논의는 형이상학적이다.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자연의 외부에 그것을 창조한 신의 존재를 상정하고 그 신이 도덕법칙을 창조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자연’을 통해 도덕을 설명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이론은 스피노자와 같은 자연주의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춰락 > 율뤼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덕적 판단에 대한 인지주의와 비인지주의에 대해. (0) | 2020.02.29 |
---|---|
칸트는 어떻게 도덕 감정을 통한 윤리학을 비판했나? (0) | 2020.02.29 |
밀은 행위공리주의자인가 규칙공리주의자인가? (0) | 2020.02.29 |
공리주의(Utilitarianism)와 그에 대한 반박: 롤즈와 윌리엄스 (0) | 2020.02.29 |
도덕의 우선성 문제(overriden)와 중요성: 내재론과 외재론 (0) | 2020.02.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