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춰락/율뤼확

크리스틴 코스가드의 구성주의와 소급논변(regressive argument) 요약

by 로짘 2020. 2. 29.

크리스틴 코스가드의 윤리학적 입장은 구성주의’(constitutivism)라고 불린다. 윤리학에서 구성주의는 거칠게 말해, 사람들 간의 일치 또는 합의에 의해 규범적 참을 구성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도덕적 가치가 구성으로부터 도출된다고 여기는 입장이다. 도덕적 가치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구성주의 윤리학이 가능할 것이나 현대의 구성주의는 존 롤즈(John Rawls)가 칸트적 구성주의를 제시하면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1. 코스가드의 구성주의의 특징: 인간의 자율성이 책무(의무)의 원천이다.

 

코스가드는 칸트와 현대의 칸트적 구성주의자들 특히 롤즈가 도덕적 규범성의 원천은 행위자 자신의 의지에서 발견된다는 입장을 따른다. 그리고 그녀는 칸트적 구성주의의 핵심을 인간의 자율성이 우리를 의무지울 수 있다는 것으로 고려한다. 인간의 마음은 반성적 구조를 갖고 있고 이는 우리 자신에 대한 실천적 정체성에 대한 이해(a conception of one's practical identity)를 지니게 하며 이는 행위의 근거와 책무를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먼저 코스가드의 실천적 정체성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 지를 묻고 그에 따른 행위를 해야 하는 근거를 찾게 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원생인 철수는 대학원생으로서의 그의 삶을 가치 있게 여기며 대학원생으로서 그의 행위가 수행될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다시 말해, 그의 실천적 정체성은 그를 대학원생으로 이해하며 이는 매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행위법칙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철수는 그의 실천적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스스로 열심히 공부할 이유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때 철수가 공부를 하지 않고 게임을 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철수가 그 자신을 스스로 대학원생으로써 실천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싶다면 그는 게임을 하지 말아야 하는 책무가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코스가드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실천적 정체성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행위의 이유와 책무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코스가드는 우리의 실천적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대부분 우연적이며 특정 환경과 조건 그리고 행위자의 선택에 따라 다른 방식의 이해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에 그녀는 우연적이지 않은 실천적 정체성에 대한 이해로 인간’(a human being)을 제시한다. 인간으로써의 실천적 정체성은 우리 인간을 합리적으로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행위해야 한다는 행위 법칙을 제시한다는 것이며 우리는 이를 가치있게 여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단계에 의해 지지된다.

 

첫째, 우리는 특정한 실천적 정체성을 지녀야 하는데 만약 우리가 아무런 실천적 정체성도 지니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유와 책무를 지닌 존재로 여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이유와 책무를 가진 존재로 여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특정 실천적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우리는 대학원생이나 군인, 누군가의 애인 등의 특정 실천적 정체성을 지니고 이를 가치있게 여김으로써 이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이러한 실천적 정체성을 가치 없게 여긴다면 이에 해당하는 대상 역시 가치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셋째, 앞서 언급한 인간이라는 신천적 정체성에 대한 이해는 이성적으로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행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성적으로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어떤 것을 가치 있게 여길 수 있는 능력이다. 둘째 단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인간으로써 가치있기 위해서는 인간이라는 실천적 정체성을 가치있게 여겨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를 이유와 책무를 지닌 존재로 여기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인간이라는 실천적 정체성을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코스가드는 우리가 인간으로써 실천적 정체성을 가치 있게 여긴다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들을 인간 존재로서 가치 있게 여김을 함축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타인을 살해하거나 노예로 부리는 것 등 타인의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는 곧 나의 인간으로써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우리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실천적 정체성을 지니고 이를 가치 있게 여길 때, 우리를 도덕적 책무를 가진 존재라고 여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행위 해야할 이유가 있다고 여긴다고 주장한다.

 

코스가드의 이러한 입장은 행위의 이유가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되는지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 준다. 앞서 언급했듯이 철수가 그의 실천적 정체성을 대학원생으로이해한다면 그는 그가 공부를 매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책무를 지니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대학원생으로써의 행위 준칙에 따를 때, 공부를 하지 않고 게임을 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대학원생으로써의 실천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싶다면 게임을 하지 않고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코스가드의 입장에서는 행위 준칙을 실천적 정체성에 대한 이해에 비추어 숙고를 함으로써 행위의 이유를 고려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특정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측면에서 행위의 이유는 행위자가 스스로에 대한 어떠한 실천적 정체성을 지니는가에 따라 구성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코스가드의 소급논변(regressive argument)

 

규범성에 대한 칸트의 입장은 목적론적이지 않다. 이는 코스가드의 규범성에 대한 입장 역시 같은 방향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인간성을 목적으로 삼는 것은 도덕적 법칙을 채택하는 동기가 아니다라고 말했으며 이런 점에서 칸트와 그녀의 입장은 도덕성을 욕구를 통해 이해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칸트와 같이 코스가드의 입장에서도 인간성은 곧 우리의 합리적 본성이며 이는 곧 이성을 통해 목적을 결정하는 능력이다. 이는 욕구나 경향심(inclination)과는 독립적인 것이며 이러한 인간성은 유일하며 무조건적인 선이다. , 이는 다른 모든 좋은 것들이 좋게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기에 선(혹은 좋음, good)은 합리적 개념이 된다. 이런 점에서 도덕성의 실패는 비합리성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경향심이나 욕구가 합리성에 독립적인 것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들로부터 반성적 거리”(reflextive distance)를 둠으로써 합리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는 욕구나 경향심이 어떤 행위의 이유 혹은 목적이 되지 않음을 논함으로써 보여질 수 있는데 코스가드의 소급논변은 이를 보여준다.

 

먼저 이 논변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제를 지닌다. (1) 모든 행위는 목적을 지닌다. (2) 행위자는 그의 목적이 선(good)한 것인지를 고려함으로써 무엇을 할 것인지를 선택한다. 이러한 전제를 따를 때, 경향심이나 욕구가 어떤 행위의 이유이기 위해서는 욕구에 따른 행위에 대한 정당화가 가능해야 하며 또한 이것이 선함이 보여져야 한다. 하지만 어떤 욕구는 행위의 이유가 되지 않으며 또한 그 욕구의 목적 역시 선하지 않기에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기만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해보자. 이러한 욕구는 거짓 약속을 하려는 목적을 지니게 한다. 거짓 약속을 하려는 목적은 선하지 않다. 또한 남을 기만하려는 욕구를 지니더라도 그 사람에게 거짓 약속을 할 이유를 지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욕구는 거짓 약속을 하는 행위를 정당화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욕구는 어떤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선하지도 않다.

 

 

위의 논변은 이유가 구성되는 방식에 따른 논변이며 목적의 선이 결정되는 방식에 따른 논변 역시 제시 가능하다. 이는 우리가 선한 목적을 지닐 때, 이 목적을 선하게 만들어주는 것인 경향심인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먼저 경향심은 그 자체로 우리의 목적을 선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향심 그 자체는 선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경향심이 행복과 일관적일 경우에도 그 목적을 선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데 이는 행복 역시 항상 좋은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로부터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 그 자체만이 목적을 선하게 만들어준다고 할 수 있다.

 

3. 코스가드의 규범성에 대한 구성주의와 실재론.

 

전통적으로 도덕적 실재론의 입장은 사실, 관계, 사건 등과 같은 도덕적 속성 X에 대한 다음과 같은 논제로 설명될 수 있다.

 

논제. X는 마음에 독립적인 방식으로 존재한다.

도덕적 반실재론은 위 논제를 거부하는 입장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도덕적 속성 X는 마음에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도덕적 반실재론은 (1) 도덕적 속성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입장 그리고 (2) 도덕적 속성이 마음에 의존(mind-dependent)해서 존재한다는 입장으로 생각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반실재론은 도덕적 비인지주의(moral noncognitivism)와 도덕적 오류이론(moral error theory)로 생각되어질 수 있다. 문제는 도덕적 오류이론과 같은 경우, 도덕적 판단에 관한 진술이 사실에 관한 것이며 참 혹은 거짓의 진리값을 지닐 수도 있지만 그러한 진리값을 지니는데 실패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돈을 훔치는 것은 나쁘다라는 진술을 우리가 말할 때,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그름의 속성(the property of wrongness)을 예화 하는 것이 훔치는 행동이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속성은 예화 되지 않으며 (혹은 그러한 속성은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발화는 (거짓이 아니라) 허위(untrue)가 된다는 것이다. 도덕적 오류이론가에 따르면 도덕적 논의는 일반적으로 오류에 의해 오염된(infected) 것이라고 말한다. , 도덕적 참은 존재하지 않는 도덕적 회의주의가 제시된다는 것이다. 도덕적 회의주의에 대한 한 가지 대안은 도덕적 실재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코스가드는 도덕적 실재론이 회의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녀에 따르면 도덕적 실재론은 마음에 독립적인 사실을 인정하기에 도덕적 개념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규범적 실체 혹은 사실을 묘사하는 것이 되는데 이를 받아들일 경우 어떻게 도덕적 진리가 과학적 진리와 같이 객관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이러한 실재론은 도덕적 규범성의 물음에 대답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먼저 코스가드는 도덕적 실재론을 따르자면 어떤 행위가 선함은 그 행위에 대한 우리의 의지나 숙고에 독립적으로 결정되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만약 그 행위의 선함이 우리의 마음에 독립적으로 정당화된다면 어떤 행위는 우리의 숙고 없이도 선하며 우리는 그것을 따를 의무를 지니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왜 그러한 행위를 해야 하는지 도덕적 실재론은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코스가드의 구성주의는 우리의 실천적 정체성을 통해 그리고 우리의 합리적 선택에 근거해 실천이성의 원칙을 구성하고 이를 통해 우리를 의무지울 수 있다고 여긴다. 도덕적 실재론의 입장에서 규범적 개념은 외부 세계의 규범적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묘사하는 것이 되지만 구성주의에서 규범적 개념은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을 도식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 독립적인 어떤 사실이나 존재를 묘사하는 것은 아니게 된다. 정리해서, 구성주의는 실재론과 달리 도덕적 개념이 세계를 묘사하는 기능을 한다고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재론이 직면하는 부담 즉 도덕적 진리가 과학적 진리와 같은 방식으로 객관적이라는 점을 보여줄 부담으로부터 벗어난다.

 

코스가드가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구성주의를 통해 실천이성의 원칙의 규범적 힘이 정립된다는 점이다. 코스가드는 만일 당신이 문제가 실재한다고, 당신이 문제라고, 당신이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라고 인식한다면, 그리고 어떤 해결이 유일한 혹은 최선의 해결이라고 인식한다면, 그 해결은 당신에게 구속력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코스가드의 구성주의가 도덕적 회의주의에 대응하는 전략의 핵심으로 평가된다.

 

코스가드는 도덕적 실재론 보다 구성주의가 도덕적 회의주의에 대한 더 나은 대안이 된다고 여겼지만 그녀는 구성주의와 실재론이 양립가능하다고 여긴다. 다시 말해, 그녀는 전형적인 도덕 실재론은 거부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구성주의적 규범윤리학이 반실재론으로 귀결되길 원치는 않는다.

 

참고. 도덕적 실재론과 반실재론은 여기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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