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의무와 공리주의.
공리주의는 거칠게 말해, 개인의 행복(well-being)의 총합을 극대화하는 행위만이 옳다는 입장으로 행위공리주의와 규칙공리주의로 구별될 수 있다. 행위공리주의는 어떤 행동이 적어도 선택 가능한 다른 행동의 결과만큼의 결과를 가져올 경우에만 옳다고 여기는 입장이며 규칙결과주의는 행위가 어떤 규칙에 의해 허용될 경우에만 옳다고 본다. 행위공리주의자로는 벤담과 밀을 고려할 수 있으며 규칙공리주의로는 후커를 고려할 수 있다. 만약 공리주의자들이 약속의 의무를 받아들인다면 행위공리주의자는 약속을 깰 경우 부정적인 결과가 일어나기 때문에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또한 규칙공리주의자는 약속-지킴의 규칙(the rule of promise-keeping)이 최고의 결과를 산출해 내기 때문에 약속의 의무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또한 롤즈(1955)의 견해를 따르자면, 행위공리주의(결과주의)에서 약속을 깨는 것이 허용가능한 경우는 약속을 깨는 행위가 더 나은 기대효과(expected value)를 가져오는 경우이며 규칙공리주의에 있어 약속을 깨는 것이 허용가능한 경우는 규칙공리주의자들의 규칙에 의존하게 되는 차이가 생긴다. 먼저 행위공리주의의 입장에서 약속의 의무가 어떻게 설명되며 이에 대한 어떠한 비판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먼저 행위공리주의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한 가지 비판은 약속을 깨는 것이 지키는 것 보다 더 많은 공리를 산출한다면 약속을 깨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행위공리주의자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약속자(promiser)에게는 약속을 깨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산출할 수도 있겠지만 피약속자(promisee)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피약속자는 약속자가 약속을 지키리라는 기대를 하게 될 텐데 약속을 깨게 된다면 이 기대가 깨짐으로써 약속자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위공리주의자는 약속의 의무를 고려할 때, 신뢰가 깨짐으로써 피약속자가 지니는 고통에 초점을 맞춰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피약속자의 기대와 신뢰의 관점에 대한 행위결과주의의 설명도 다음과 같은 무인도사례(Desert Island Case)가 존재한다. 고립된 무인도에 두 사람이 어떤 약속을 했는데 이때 약속자가 죽어버린다면 피약속자는 약속을 지키라는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으며 누구도 그 약속을 모르는데 약속이행의 의무가 있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약속자던 피약속자던 이들이 행위공리주의자라면 약속을 이행하는 순간에 약속이행의 행위가 최대 공리를 산출하는 것인지를 판단해 행위를 할 것이므로 사실상 행위공리주의자가 약속이행의 의무를 지켜야 하는 가에 대한 물음이 제시될 수 있다.
후커와 같은 규칙공리주의자는 거칠게 말해, 행위자가 그 규칙을 내재화했을 때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규칙을 규칙결과주의의 도덕원칙으로 정하자는 입장을 지닌다. 그래서 약속이행의 의무는 약속에 관한 규칙이 압도적 다수의 행위자에게 내재화될 때, 이 내재화가 최선의 결과를 일으키는 경우 규칙공리주의의 도덕원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입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 대한 비판은 주로 규칙공리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제시된다. 대표적으로 행위공리주의와 규칙공리주의가 사실상 차이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행위자는 항상 최대 공리를 산출하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규칙을 내재화해야 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경우 약속을 이행해야 하는 가 역시 약속을 이행하는 행위가 최대 공리를 산출하는 가에 대한 계산을 통해 이루어짐으로 행위공리주의에 제기되었던 문제와 같이 사실상 공리주의자가 약속이행의 의무를 지녀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 후커는 항상 최대 공리를 산출하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규칙을 내재화 할 경우의 비용효과에 대한 분석을 할 경우, 이 비용이 충분히 크기 때문에 그러한 규칙을 내재화할 필요가 없고 그렇기에 규칙공리주의와 행위공리주의는 구별이 되고 약속이행의 의무 역시도 내재화된 약속지킴의 규칙에 의해 평가될 수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약속의 의무와 비결과주의.
비결과주의 진영에서 약속이행의 의무를 정당화하는 방식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관행의 견해(the practice view)에 따르면 사람들이 서로 약속을 하고 지키는 사회적 관행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며, 공정한 경기의 의무(the Duty of Fair Play) 아래에서 사람들은 관행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둘째, 규범적 능력 견해(the Normative Powers View)는 우리 모두는 의무를 창출하는 규범적 능력을 지니기에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이라는 의사를 남에게 전달하는 행위 자체가 약속이행의 의무를 만들어낸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기대견해(the Expectation View)가 존재하는데 이에 따르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이라는 의사를 남에게 전달하면 상대는 우리가 그렇게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며 이러한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 한 행위가 그른 것이 된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약속이행의 의무는 관련된 상대방을 실망시키지(letting others down) 말아야 한다는 일반적인 도덕적 의무에 의해 정당화된다.
기대견해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입장으로 스캔런이 있다. 그의 입장은 확신견해(the Assurance View)로 불리는데 이에 따르면 약속자(promiser)가 피약속자(promisee)에게 X를 할 것이라는 의사를 표명할 때, 약속자는 피약속자에게 그렇게 할 것이라는 확신을 불러일으키게 되며 이러한 확신을 위반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위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는 것이다. 또한 바로 이 의무가 약속자가 X를 해야 할 의무를 정당화해준다.
확신견해는 몇 가지 비판을 받는데, 만약 피약속자가 약속자의 발화 내용에 아무런 확신을 가지지 않을 경우 약속자는 그것을 실현할 의무를 전혀 가지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번도 돈을 갚지 않은 철수가 순이에게 애원하며 돈을 한번만 더 빌려 달라고 할 경우 순이는 철수가 돈을 갚을 것이라는 확신을 전혀 하지는 않겠지만 동정심에 정해진 날에 돈을 갚으리라는 약속을 받고 돈을 빌려 준다고 생각해 보자. 이 경우, 순이는 철수가 돈을 갚으리란 아무런 확신을 지니지 않지만 철수는 돈을 갚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스캔런은 약속자가 자신의 발화 내용을 실현해야 할 의무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입장에 따르면, 철수가 돈을 갚아야 할 의무를 지니는 것은 약속이행의 의무 때문이 아니라 이른바 호의를 베풀어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할 것을 요청하는 원칙으로써의 감사의 의무(the obligation of gratitude)에 의해서 라는 것이다. 스캔런은 그의 계약주의에 근거해 신의원칙(the Principle of Fidelity)을 제시해 피약속자가 확신을 지닐 경우 약속자가 약속이행의 의무를 지닐 수 있음을 설명한다. 그런데 철수의 경우에는 피약속자인 순이가 확신을 지니지 않기에 감사의 의무에 의해서 돈을 갚아야 할 의무를 지닌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대답에도 문제가 있다. 쉬프린은 감사의 의무에 의존하는 스캔런의 대응이 약속에 대한 확신견해 자체를 잉여적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고 비판한다. 확신견해의 관점에서 볼 때 실제로 약속이 성립하는 경우에도 그 약속과 무관한 의무가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약속이 하는 역할이 궁극적으로 잉여적이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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