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춰락/서양 옛날 및 EU춰락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비판.

by 로짘 2020. 2. 29.

안셀무스는 신앙은 지성을 요구한다는 말을 따라 신앙의 합리성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는 교리의 내용을 증명의 대전제로 보지 않고 언어와 논리를 통한 증명을 시도했다. <모놀로기움><프로슬로기움>에서 제시된 그의 증명은 하나님을 최고선으로서의 존재 그리고 가장 큰 존재라고 고려하고, ‘최고선가장 큼의 개념을 분석함으로써 논증이 제시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놀로기움>의 증명은 최고선으로서의 신 존재에 대한 논의를 존재에 적용시킨 논증이 제시되고 있으며 <프로슬로기움>에서는 이러한 논증이 가장 큼의 개념 분석을 통해 보다 발전된 방향에서 제시된다고 볼 수 있다.

 

- <모놀로기움> 증명.

 

안셀무스의 모놀로기움 증명은 을 통해 제시되며 최종적으로는 존재에 적용시킨 논변이 제시된다. 먼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들은 선을 지니고 있음이 전제된다. 그리고 어떤 사물이 한정된 정도의 선을 지니고 있다면 이러한 선은 그것을 지니고 있는 더 큰 선에 의해 주어진다는 전제를 지닌다. 더 큰 선은 그것 보다 더 큰 선을 통해 주어지며 이러한 과정을 밟아 가다 보면 그 자체로 선한 완전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은 좋은 것이므로 선 자체인 완전한 선은 가장 좋은 것이고 이 보다 나은 어떤 것도 없다. 완전선은 모든 존재보다 완전한 실재라고 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신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논증은 플라톤이 현상계의 개별자들이 각기 그에 맞는 이데아를 지니며 이러한 이데아들의 이데아인 최상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 것과 유사한 측면을 지닌다는 점에서 플라톤적이다.

 

안셀무스의 위와 같은 논변은 이제 존재에 적용된다. 그는 존재하는 것은 어떤 것에 의존하여 존재하던가 스스로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것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것들은 결국 스스로 존재하는 것에 의존해야 할 것이며 결국 스스로 존재하는 유일하고 궁극적인 존재가 있을 것인데 이러한 존재가 모든 것들 중 가장 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프로슬로기움> 논증.

 

<프로슬로기움>에서 안셀무스는 크기에 관한 논증을 보다 자세하게 제시한다. 여기서의 크기라는 것은 단순히 더 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같은 속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안셀무스는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큰 어떤 존재를 생각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하면서 이는 유신론자와 무신론자가 모두 받아들이는 바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하에 <프로슬로기움> 2장에서의 안셀무스의 논증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논증이 제시된다.

 

신 존재 증명 1.

 

(1) 신은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2)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은 생각(지성) 안에 존재한다.

(3) 어떤 것이 생각 속에 존재한다면 생각 밖에 존재하는 것이 생각될 수 있고 생각 밖에 존재하는 것이 더 크다.

(4) 그러므로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신이 존재한다.

 

같은 전제를 지니고 <프로슬로기움> 3장에서 안셀무스는 또한 다음과 같은 논증을 제시한다.

 

 

신 존재 증명 2.

 

(1)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2)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보다 크다.

(3)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 이어야 한다.

(4) 그러므로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될 수 없다.

(5) 그러므로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신이 존재한다.

 

- 토마스 아퀴나스의 비판.

 

안셀무스의 이러한 논증을 토마스 아퀴나스는 비판한다. 첫 째로, 아퀴나스는 안셀무스의 논증이 신이 육체적인 존재라고 잘 못 알려질 수 있는 부분을 경계한다. 다시 말해,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신이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것 보다 생각 밖에 존재하는 것이 더 크다는 논증을 잘 못 이해할 경우,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신이 육체적으로 존재한다고 오해할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신이 생각 속에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생각 밖에 존재한다는 결론을 이끌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처음부터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안셀무스의 논증은 애초에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안셀무스의 주장은 무신론자들에게도 설득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을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존재>로 이해하더라도 이러한 대상이 생각으로만 존재하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그의 마지막 이유이다. 아퀴나스는 인간의 지성이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선험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간의 지성은 나약하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의 원인이자 본질인 그러한 존재의 가능성을 선험적으로 알 수 없고 다만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관념의 분석이나 경험적인 논증에 의해서 알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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