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춰락/서양 옛날 및 EU춰락

<필레보스> 대화편에서 플라톤이 말하는 인간의 좋은 삶을 한정과 비한정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한 적도론(혹은 중용론)에 관해.

by 로짘 2020. 2. 29.

<필레보스> 대화편의 주제는 도대체 무엇이 좋은 것인가?”를 밝히는 것으로 특히 어떤 삶이 좋은 삶(행복한 삶)인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필레보스>는 인간 삶의 본으로서 좋음의 이데아의 기능에 대한 탐구이기 보다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이 일시적이며 순수하지 못함에도 어떻게 훌륭할 수 있는 가를 고려한다.

 

<필레보스>에서 플라톤(소크라테스)은 쾌락(hedone)과 실천지(phronesis)가 혼합된 삶이 좋은 삶이라고 여기는데 먼저 그는 쾌락도 실천지도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아님을 논하고 혼합된 모든 삶이 좋은 것이 아니라 탁월하게 혼합된 삶이 좋음을 논한다.

 

먼저 플라톤의 쾌락도 실천지도 좋은 것이 아니라는 논변을 살펴보자. 그는 좋은 것은 완전하고(teleon) 충족적이며(hikanon) 택함직하다(haireton)고 말한다. 그리고 쾌락과 실천지가 좋은 것이라면 위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할 것이나 그렇지 않음을 주장한다. 그는 쾌락의 삶 속에 실천지가 없는 경우와 실천지를 지닌 삶 속에 쾌락이 없을 경우를 고려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최대의 쾌락을 완벽하게 지니고 있지만 지성(nous)이나 실천지를 결여할 경우 자신이 쾌락을 누리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므로 쾌락만을 지닐 경우 이는 인간의 삶이 아닌 일종의 해파리나 바다 생물들의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삶은 무언가를 필요로 하기에 완전하지도 충족적이지도 택함직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쾌락만을 지닌 삶은 좋은 삶이 아니다. 다음으로 어떤 사람이 실천지와 지성을 지니지만 쾌락과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사는 경우를 살펴보자. 플라톤은 이러한 삶은 쾌락도 괴로움도 없기에 가장 신적인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인간적 지성이 아닌 참되고 신적인 지성을 지닌 신들에게나 가능한 삶이기에 택함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쾌락만을 지닌 삶은 인간 이하의 삶이며 실천지와 지성(그리고 지식)만을 지닌 삶은 초인간적 삶이므로 인간의 좋은 삶은 적어도 즐거움과 지성이 혼합된 삶이어야 완전하며 충족적이고 택함직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쾌락과 실천지가 혼합된 모든 삶이 좋은 삶인 것은 아닌데 그는 좋은 삶의 실현을 위한 혼합 방식을 변증술을 통해 설명한다.

 

(플라톤은 형상들의 관계를 모음’(synagoge)나눔’(diairesis)의 방법에 의해 분석하며 이 방법을 변증술이라고 불렀다. 모음이란 정의할 부류가 속하는 하나의 유(genos)를 포착하는 절차이고 나눔의 대상이될 하나의 유적 형상을 확정하기 위한 것이다. 나눔이란 유적 형상을 종(eide)적으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최하종인 최하위의 종적 형상에 이를 때까지 나누는 절차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은 대우주에서 좋은 것들이 생성되는 방식을 소우주인 인간의 좋은 삶을 위한 본으로 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1) 한정되지 않은 것 (2) 한정자 (3) 혼합된 것 (4) 혼합의 원인으로 네 가지로 나누고 있다. 플라톤은 무엇인가가 만들어지려면 항상 주어진 것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고 그래서 혼합을 통해 좋은 것들이 창출되기 위해서는 질료가 주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질료가 되는 것을 한정되지 않은 것이라고 고려했다. 한정되지 않은 것들은 더 차가움더 뜨거움과 같이 그 정도가 무한하게 이어지는 것들이며 쾌락도 한정되지 않은 것에 속한다. 한정자는 한정되지 않은 것들을 한정하는데 이용되는 것으로 수학적·기하학적 비율 등이 여기에 속했다. 그는 우주의 좋은 것들이 한정되지 않은 것과 한정자의 혼합을 통해 생성된다고 여겼다. 예를 들어, 한정되지 않은 더 뜨거움더 차가움같은 것은 차가움과 뜨거움의 일정 비율로 혼합될 수 있으며 혼합은 한정되지 않은 것들에 한정자들이 개입하여 적도(metron)와 균형을 이룬 것으로 이해된다. 플라톤은 적도와 균형을 이러한 혼합들을 가치있게 혹은 무가치하게 만드는 혼합의 원인이라고 고려했다.

 

플라톤은 쾌락과 실천지가 혼합된 삶을 한정되지 않은 것인 쾌락과 한정자인 실천지 및 지성이 혼합된 것이라고 여긴다. 물론 모든 쾌락과 실천지의 혼합이 좋은 삶은 아니며 적도와 균형을 지닌 쾌락과 실천지의 혼합이 좋은 삶이 된다. 만약 지성과 실천지가 지나치게 강한 쾌락과 혼합될 경우 지성과 실천지가 내재한 혼을 광기로 혼합시켜 지성과 실천지가 생기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무관심으로 인한 망각을 초래해서 지성과 실천지를 소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지성은 혼합의 원인이기도 한데 이는 플라톤이 지성을 모든 것의 원인이라고 고려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성이 (모든 것의) 원인으로 작용하여 한정되지 않은 것을 한정하여 적도와 균형을 이루어내고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창출해 내듯이 인간의 좋은 삶을 실현하는 원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또한 어떤 것이 좋은 것은 아름다움의 성질을 지니기에 아름다움 역시 혼합의 좋음의 원인이 되며 진실성이 없다면 진실로 생성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생성되더라도 존속할 수 없을 것이므로 진리성 역시 혼합의 원인으로 고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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