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춰락/UK-US춰락

레셀(B. Russell)의 논리 원자론은 왜 '논리 원자론'이죠?

by 로짘 2020. 1. 18.

거친 수준에서 러셀의 논리원자론을 복습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넋두리해 봅니다. 깊게 들어가면 은근 난해하고 쉽게 막히는 게 러셀이라 조심 조심하면서 쓰겠지만 세상 너무 어렵게 살 필요 없잖아요? 

 

Munitz, M., Contemporary Analytic Philosophy 및 Russell, B., The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를 참고했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러셀(Russell)의 논리원자론(Logical Atomism) 혹은 다원론(Pluralism)은 러셀 그 자신의 철학을 명명하는 명칭이며 그 정확한 내용에 대한 평가는 학자마다 다소 차이가 난답니다. 뮤니츠(Munitz)가 제시하는 한 가지 해석은 러셀의 논리원자론은 헤겔(Hegel)의 일원론(monism)을 비판하며 성숙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특징적인 테마(characteristic themes)로부터 파생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러셀이 주로 사용한 철학의 방법(technique)이나 원리(principles)들을 통해서 해석할 수 있다는데요. 이 글에서는 헤겔 철학을 비판하며 다원론(pluralism)을 주장하게된 그 배경을 통해 러셀의 논리원자론이 어떻게 생성됐는지를 살펴보고 그 다음으로 일반적인 러셀의 철학 이론을 살펴봄으로써 ‘논리원자론’이란 이름에 걸맞는 러셀 철학의 모습을 살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헤겔 철학을 비판하고 다원론을 주장하게된 논리원자론의 배경부터 살펴보지요.

 

   케임브릿지(Cambridge) 대학에서 수학하던 초기에 러셀은 헤겔의 철학을 접했으며 이를 매력적으로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곧 헤겔 철학의 대다수가 틀렸음을 주장하게됩니다. 여담입니다만, 후에 러셀이 '헤겔 철학은 안개낀 날의 꽃마차'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죠? 주의해 주실 것은 이것은 러셀의 입장이지 모든 분석철학자들의 입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공부를 하다 보면 헤겔 철학은 안개낀 날에 꽃마차라도 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는 새까맣거든요. 러셀 정도나 됐으니 꽃마차의 실루엣을 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어쨌든 분석철학자 중에도 헤겔을 연구하는 주요한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래햄 프리스트(Graham Priest)의 참인 모순이 존재한다는 양진주의(dialetheism)은 헤겔 연구와 연결이 되며 피츠버그 대학의 로버트 브랜덤(Robert Brandom) 같은 철학자는 헤겔을 엄청나게 좋아합니다. 다시 글로 돌아와서요. 헤겔은 세계(universe)를 밀접하게 짜여진 하나의 단위로 생각했으며 러셀의 말을 빌리자면 이는 하나의 젤리 같아서 한쪽을 만지면 다른 쪽도 흔들리는 전체(the Whole, 'the Whole', 'Reality' 그리고 'the Absolute'은 헤겔 철학에서 특징적 용어라 굵은 글씨로 적습니다.)라고 생각했답니다. 이때, 이 (the Whole)는 젤리와 달리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없으며 (the Whole)로서의 실재(Reality)가 아니고서는 그 어떤 것도 진리(true)가 될 수 없다고 여겼다 합니다. 그리고 (the Whole)란 완벽함(the Absolute)이며 헤겔은 이를 신(God)이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이렇게 헤겔의 철학은 전체(the Whole)에 대한 파악을 통해 실재(Reality)를 파악하므로 러셀은 이를 일원론(Monism)적인 철학으로 파악합니다. 
       

   러셀에 따르면 헤겔의 이러한 철학은 전체(the Whole)를 파악하지 못하면 진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철수’라는 단칭명사(singular term)를 파악하기 위해 ‘철수’와 관련된 모든 관계(relation)를 알아야 한다고 비판합니다. 그에 따르면 칸트(Kant)가 그랬듯이 헤겔도 모든 문장이 주어와 술어로 나뉠 수 있다고 고려했고 주어 개념의 의미는 그것의 술어 개념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이해했다고 하네요. 프레게(Frege)의 철학을 받아들여 문장을 주어와 술어 관계가 아닌 대상(object)과 술어 관계로 파악하는 러셀은 문장에 대한 그러한 파악은 이항술어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힘들게 한다고 비판합니다. 이에 브레들리(Bradley)와 같은 헤겔주의자(Hegelian)은 두 항(term) 사이의 모든 관계(relation)는 그 두 항이 지닌 본질적인 속성(intrinsic property)을 지닌다고 대답하는데 러셀의 헤겔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첫째로 러셀은 이항술어의 경우 헤겔주의는 두 항간의 본질적인 속성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비판합니다. 예를 들어, ‘철수는 영희의 삼촌이다’의 경우 ‘~는 의 삼촌이다’라는 이항술어가 ‘철수’와 ‘영희’간의 본질적인 관계를 표현한다면 ‘영희는 철수의 삼촌이다’와 같은 관계의 대칭성(symmetic)이 성립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이에 헤겔리안은 ‘~는 의 삼촌이다’와 같은 술어는 ‘~는 의 조카이다’와 같은 술어와 함께 이해해야 한다고 대응할 것인데요. 말하자면 삼촌-조카 관계를 파악하고 있어야 ‘철수’와 ‘영희’간의 전체(the Whole)를 파악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겠죠.
         

   둘째로, 러셀은 위와 같은 대응에 대해, 어떤 단칭명사에 대한 이해를 위해 전체(the Whole)를 파악해야 한다면 누구도 ‘철수’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예를 들어 실제 철수가 그의 누나가 영희라는 아이를 낳았음을 전혀 알지 못한다면 철수 그 자신조차 자신이 지닌 본질적인 속성이 바뀌었음을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철수’와 ‘영희’와의 관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는 의 삼촌이다’라는 관계에 대한 전체(the Whole)를 파악하지 못한 경우가 되는 것이죠. 이렇게 러셀은 어떤 대상이 지닌 본질적 속성을 그 대상과 다른 대상 간의 관계로부터 바라봐야 할 것이며 이를 고려할 경우 ‘철수’와 관련된 모든 대상 간의 관계를 알 수는 없을 것이므로 ‘철수’에 관한 본질적 속성을 아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헤겔주의자의 말을 따르자면 ‘철수’의 의미는 철수에 관한 모든 참이라고 정의될 수 있을 텐데 이 경우 ‘철수’의 의미를 알기 전에 철수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하니 누구도 임의의 단칭명사에 대한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고 비판합니다.

         

   이러한 헤겔주의자의 문제점에 대해 러셀은 단칭명사를 이해하기 위해 전체(the Whole)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전체(the Whole)에 대한 파악을 부정하고 철수가 다른 대상과 맺는 여러 관계에 따라 ‘철수’가 적용될 수 있는 여러 관계 혹은 술어가 고려될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말하자면, 전체(the Whole)은 부분으로 나누어 질 수 있기 때문에 전체(the Whole)에 대한 파악 없이 그 부분에 대한 파악이 가능함을 주장하는 것이죠. 바로 이러한 지점이 헤겔주의와 같은 일원론을 부정하고 다원론(후에 이를 ‘논리원자론’이라 명명하더군요)을 주장하는 배경이 되는 것이죠.

 

 

   다음으로 러셀이 일반적으로 철학에서 중시하는 원리 혹은 방법을 통해 그가 그의 철학을 왜 논리원자론이라고 부르는지 고려해 보겠습니다. 러셀 철학에 있어 주요한 두 테마는 존재론(ontology)과 지식 이론(theory of knowledge)으로 생각할 수 있고 이 둘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특히 러셀은 이 두 분야의 문제를 의미론(theory of meaning)의 측면에서 파악하려고 했었는데 의미의 본성에 관한 고려가 의미의 전달자(carrier)로서의 언어(language)에 집중한다는 측면에서 그는 언어 분석을 중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언어 분석은 어떻게 할까요? 러셀은 철학의 본질은 어떤 의미에서 논리학(logic)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논리학을 통해 언어를 분석한다는 측면에서 논리학을 원자적인(atomistic) 것으로 바라보았던 것이죠. 논리학을 원자적인 것으로 받아들인 하에서 그의 철학을 진행한다는 면이 그의 철학을 논리원자론으로 부르는 한 예가 될 수 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러셀 철학의 원자적 요소는 여기에 그치지 않죠. 그는 일원론을 반대해 다원론을 주장했지만 우리가 고려하는 불필요한 존재자에 대해서는 오캄의 면도날(Ockham's Razor) 원리에 따라 가장 단순한 요소(simple entities)에 의해 환원(reduction)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실수들의 존재는 양변이 같은 직각 이등변 삼각형에 대한 피타고라스 정리의 적용을 통해 추론될 수 있으나 이는 특정 유리수들의 집합을 통해 정의할 수 있으니 실수 체계는 유리수 체계로 환원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환원 절차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단순(simple)하고 더 이상 분석되지 않는 요소입니다. 즉, 환원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자적인 요소로 단순한 요소(simple entities)를 고려하는 것입니다. 그는 분석되지 않는 단순한 요소들로 감각소여(sense-data), 기억, 내성(introspection) 그리고 보편자(universal)를 고려하는데요. 또한 이러한 단순한 요소들이야 말로 직접 대면(acquaint)가능 한 것으로 직접지(knowledge by acquaintance)를 구성한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모든 이해가능한 명제들은 언어를 평가하는데 원자적인 논리학을 통해 우리가 대면(acquainted)하는 것이자 원자적 요소인 단순한 요소들로 구성될 수 있도록 환원절차를 제시하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논리원자론'이라고 불린다네요.
         

   이렇게 러셀의 논리원자론은 그의 철학이 시작하는 동기였던 헤겔의 일원론을 비판하는 특징적인 테마에서 ‘다원론’ 혹은 ‘논리원자론’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또한 그에게 핵심적인 철학적 과제인 존재론과 지식 이론의 탐구에 있어서도 논리학을 원자적 요소로 사용해 언어를 분석-평가함으로써 그의 철학을 발전시킵니다. 러셀 그 자신의 철학을 위해 분석의 도구가된 논리 그 자체도 원자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존재자를 환원하는데 가장 기초가 되는 단순한 요소 혹은 분석가능하지 않은 항들 역시 원자적인 측면에서 바라 볼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모든 특징을 통해 우리는 그의 철학을 ‘논리원자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은 하지만 하여튼 그렇답니다. 

 

정리가 잘 됐는지 모르겠네요. 뭐랄까... "야 니 이름은 뭐야?"라고 물어 봤더니 이름의 기원에 대해 3시간 강의를 들은 느낌이랄까요? 어쨌든 Munitz와 Russell의 책을 이리저리 훑어 보면서 정리한 것이라 좋게 말하면 독창적인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잘 못 이해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지적과 잔소리는 제 자존감을 깎아 먹습니다. 칭찬 먼저 해주세요. 틀린 부분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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