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춰락/UK-US춰락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의 전후기 입장 비교

by 로짘 2020. 1. 26.

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적 분석 작업은 아직 그 형식이 발견되지 않은 기초 명제를 찾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 작업이 이루어졌었고 철학은 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독단적인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전기의 작업 역시 독단적이었음을 고려하며 독단주의에 대해 철저하게 거부하고 언어의 이해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는 치료법으로써의 철학을 주장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전후기 입장에 대한 표면적인 모습의 변화는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 첫째, 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논리학의 영역 및 논리적인 구조를 중시한데 반해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일상언어를 중시했다.
  • 둘째, 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분석과 정의의 방식을 중시했던데 반해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가족 유사성언어 게임으로의 설명을 중시했다.
  • 셋째, 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체계적인 철학적 집필을 중시한데 반해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격언을 주로 사용하는 집필을 중시했다.

첫째로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논리학의 영역 및 논리적인 구조를 중시했다. 그는 우리의 세계가 논리적인 구조로 짜여져 있으며 우리의 언어가 그러한 구조를 그림처럼 투영함을 고려했다. 그는 모든 명제가 참이거나 거짓이라는 생각에 근간해 프레게 논리에 대한 진리표(truth-table)를 최초로 제시했고 이를 제시해주는 진리함수의 연산(truth-function)을 통해 논리적 구조를 고려했다. 말하자면, 진리함수의 연산을 통해 원자 명제(atomic proposition)로부터 복합 명제(complex proposition)로의 조합이 가능하며 반대로 모든 명제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조합되어 있기 때문에 원자 명제로 분석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각 명제가 뜻(sense)을 부여받기 위해 외부의 대상이 지시됨을 의도하는 이러한 방식은 그러한 대상이 객관적인 영역(object space)에 존재하거나 심리적 표상(metal representation)으로써 마음의 내부에 있어야 하는 독단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 이는 언어의 전체적인 모습을 투영하지 못하므로 단어의 의미는 그것의 언어적 사용을 통해 설명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둘째로, 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분석과 정의의 방식을 중시했었다. 그가 Tractatus에서 제시한 1에서 7까지의 각 명제들은 세계’, ‘대상’(object), ‘사태’(states of affairs), ‘명제’(proposition), ‘사유’(thought) 그리고 그림’(picture) 등을 정의하며 각자에 대해 분석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정의를 통해 제시하는 방식은 독단을 피하지 못한다고 고려해 가족 유사성언어 게임개념을 통해 언어의 의미를 설명하려 한다. 앞서 비트겐슈타인은 단어의 의미는 그것의 언어적 사용이라고 언급했었다. 그리고 이 다양한 언어의 사용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언어 게임개념을 도입한다. 그는 언어가 게임과 같이 규칙을 따르는 특징을 지님을 이를 통해 설명하며 언어활동은 게임에서와 같이 관습적인 본성(conventional nature)을 지님을 언급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정의를 통해 어떤 개념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독단의 위험성이 있어 이를 피하려 했었다. 하지만 일반화를 고수하려는’(craving for generality) 철학자들의 질병을 고치기 위한 그의 이러한 시도는 다른 의미에서 설명의 최소한의 시도조차 무시될 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 이에 그는 가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 개념을 통해 일종의 유비를 제시함으로써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한다. 가족 유사성에 대한 유비는 어떤 개념의 사용에 관한 명확한 경계를 제시하지는 않기에 독단적이지 않을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어떤 개념의 다양한 사용에 대한 정확한 기술 제시를 피하면서도 이들이 유사한 종류임에 대한 설명을 제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체계적인 집필을 중시했었다. 이는 첫 번째와 두 번째에서 언급했듯이 논리 구조를 중시하고 분석과 정의를 중시했다는 측면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개념을 정의하는 방식은 특정 규칙을 제시하는 것이고 이는 독단에 이를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닌다. 특히 그는 규칙따르기’(rule-following)에 관한 회의주의적 역설(skeptical paradox)을 제시하며 이에 대해 설명한다. 예를 들어, ‘101, 102, 103, 104’의 수 나열을 보여주고 이 다음 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손쉽게 ‘105’를 떠올릴 것이나 104 이후의 수가 이전과 같이 계쏙 1을 더할 것이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냐고 그는 묻는다. 이어 그는 만약 모든 것이 규칙을 따르도록(accord) 만들어 질 수 있다면, 그러한 규칙에 반하도록(conflict) 만들어 질 수도 있을 것이며 이는 우리가 그러한 규칙을 따르는 것도 규칙에 반하는 것도 아니게 되는 역설적 상황에 이르게 된다고 언급한다. 이에 그는 규칙의 올바른 적용을 결정하는 어떠한 사실도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며 독단에 대해 철저히 거부하는 그의 입장을 공고히 한다. 이렇게 그의 독단에 대한 철저한 거부는 정의나 규칙을 제시하는 방식을 철저하게 피하게 만들었고 그렇기에 그의 후기 입장은 설명을 위해 격언을 주로 사용하여 제시된 것이다.

 

Tractatus로부터 대변되는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입장과 Philosophical Investigation으로 대변되는 그의 후기 입장은 위와 같은 차이를 지닌다. 하지만 철학은 비평의 활동(acting)이기에 이론이 아니며 세계를 바로 보기 위해 사용된 연후에는 버려져야 한다는 그의 전기 입장 역시 독단에 대한 거부로 결론을 맺었으며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역시 그러한 독단을 더욱 철저하게 거부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고려할 때, 각 입장이 그 방법론에서 차이가 나더라도 본질적인 목적에서는 동일했거나 최소한 유사했음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