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철학이란 '마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철학의 한 분야입니다. 최근에 신문이나 책에서 ‘심리철학’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특히, 영어권에서는 이 주제에 대한 토론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철학도 유행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과거에는 과학철학이 매우 인기있었고, 언어철학도 한 때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인지과학’이라는 분야가 발전하면서, ‘심리철학’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심리철학이란 영어로는 'Philosophy of mind'라고 하며, 이는 마음에 관한 철학을 뜻합니다. 우리 마음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질문들을 다루는 것이 바로 심리철학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Ⅰ. 심신이원론
우리는 평소에 마음이라는 것이 있음에 대해 크게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신'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는데, '그 사람 정신 나갔다'라는 표현에서 '정신'이라는 것이 몸과는 다른 무엇을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신이 몸과 마음으로 구성된 존재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철학에서는 '심신이원론'이라고 부릅니다.
심신이원론은 마음과 몸이 같은 수준의 존재라고 보고, 이를 철학적으로 표현한 사람이 데카르트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종교, 특히 기독교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몸은 사라지지만 영혼은 계속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간단한 질문을 던져보면, 심신이원론이 철학적으로, 또한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신이원론은 몸과 마음이 같은 수준의 존재일 뿐만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마음이 몸에, 그리고 몸이 마음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정신적으로 힘든 경험을 겪으면 몸에도 문제가 생기곤 합니다.
몸은 물질적인 존재입니다. 물질적인 존재는 물리적 법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이나 정신을 물질적인 존재라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을 비물질적인 존재로 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물질적인 몸과 비물질적인 마음이 상호작용할 수 있을까요? 물질적인 몸과 비물질적인 마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 하나만 더하더라도 심신이원론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리철학의 문제는 바로 이런 점에서 시작합니다.
앞으로 이 블로그 포스팅에서는 데카르트의 전통적인 심신이원론에 대해 중심적으로 배우고, 그에 대해 어떤 비판적인 도전을 할 수 있는지 공부할 것입니다.
II. 부수현상론
‘부수현상론’이란 심신이원론이 마주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시도로 나온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우리의 정신적인 경험들이 우리의 물질적인 몸의 활동 결과로 나타나는 ‘부산물’이라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시냇물이 흐를 때 들리는 소리는 그 흐름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현상입니다. 만약 시냇물이 흐르지 않는다면, 소리도 발생하지 않겠죠. 부수현상론은 우리의 정신적인 경험도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심신이원론은 정신을 독립적인 실체로 보지만, 부수현상론에서는 정신은 독립된 실체로 볼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만약 정신이 독립된 실체라고 본다면, 심신이원론에 대한 여러 비판에서 탈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수현상론에서는 정신을 독립된 실체로 보지 않습니다. 여기서 독립된 실체는 우리의 몸, 즉 물질이고, 정신적인 것은 그것에서 파생되는 부수적인 현상입니다.
따라서, 부수현상론은 정신적인 경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이전에 정신에게 부여했던 중요성을 낮춥니다. 이렇게 이 블로그에서는 부수현상론에 대해 배우면서, 이 이론이 어떻게 심신이원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알아볼 것입니다.
Ⅲ. 행동주의
부수현상론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어서, 정신이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정신의 영역을 따로 인정하지 않는 새로운 관점들이 나타났어요. 그 중 하나가 ‘행동주의’입니다. 심리학을 배우는 사람들이라면, 심리학의 역사에서 행동주의가 어떤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잘 알 것입니다. 지금의 심리학자들이 행동주의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진 않지만, 행동주의는 오늘날 심리학의 방향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행동주의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곧 행동이며, 행동 이외의 것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보여주는 행동이 바로 마음이라는 거죠. 마음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마음의 상태인지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행동주의는 철학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어서, 행동주의의 관점을 가지고 '심신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도 있었어요. 모든 마음에 관한 말들을 행동에 관한 말로 바꿈으로서 심신문제를 해결하려 했는데, 이 블로그에서는 이런 시도들에 대해서도 살펴볼게요.
Ⅳ. 심신동일론
행동주의의 한계가 드러나고, 특히 인지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의 여러 정신적인 현상이나 자극이 뇌의 신경물리학적이나 생리학적인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나타났어요. 그것이 바로 '심신동일론'입니다. 이 생각에서는, 마음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우리의 뇌이며, 마음이라는 것은 뇌의 신경생리적이나 신경생화학적인 일종의 물질적인 동작이나 현상이라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부수현상론과 다른 점은, 부수현상론에서는 정신적인 현상이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몸의 현상에 따라서 정신적인 현상이 있다고 보며 그 존재를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데 반해, 심신동일론에서는 더 이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마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그것이 뇌의 활동이나 작용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신동일론은 195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해서 60년대와 70년대 초반까지 철학계를 휩쓸어버렸습니다. 이 이론은 논리적으로 봤을 때 매우 설득력이 있고, 인지과학의 연구결과와 매우 잘 일치한다는 장점으로 인해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치명적인 논리적인 결함이 드러나게 되면서 70년대 이후부터는 세력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이러한 이슈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Ⅴ. 기능주의
우리가 일상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듯이, 마음을 컴퓨터와 비슷하게 이해하려는 방법이 있어요. 컴퓨터 전체는 물질적인 것이지만, 그 안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이 어떤 연산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만들어내죠. 이런 원리를 인간의 정신적인 활동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마음이 독립된 실체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보다, 마음이 수행하는 기능적인 측면을 인정하자는 것이에요. 이렇게 마음의 존재론적인 측면보다는 역할이나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하려는 관점이 바로 ‘기능주의’ 입니다.
Ⅵ. 유형물리주의의 재등장
과거에는 심신이원론이 철학의 주제였고,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는 부수현상론이, 그리고 20세기 전반기에는 행동주의가 대두되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부터는 심신동일론이 주목받았고,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기능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어요. 이런 이론들은 모두 ‘심신문제’에 대한 철학자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완전한 해답을 주지는 못하고 또 다른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심신동일론은 철학자들에게 실패한 이론으로 간주되어 버려졌지만, 그 아이디어를 다시 가져와서 새로운 버전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시 돌아온 것이 바로 ‘유형물리주의’인데요, 이는 정신적인 타입과 물리적 타입을 동일시하고 환원시키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Ⅶ. 환원주의
유형물리주의와 관련하여 환원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어요. 정신적인 것을 물리적인 것으로 바꾸려는 생각인데, 이건 심신동일론이 주장하는 기본 개념이기도 해요. 심신동일론은 마음과 몸이 같다고 생각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거기서 논리적인 결점이 발견되었어요. 그래서 물질적인 실체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정신적인 특성은 인정하자는 생각으로 변했고, 기능주의에도 이런 아이디어가 들어갔어요. 그렇지만 정신적인 특성을 인정하다 보니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문제가 다시 생겨, 다시 물리적으로 환원하려는 시도가 나타났어요.
Ⅷ. 심신이원론의 재등장
요즘 유신론자들을 중심으로 마음을 실체로 보려는 심신이원론이 다시 나타나고 있어요. 특히 기독교 같은 종교에서는 인간의 정신을 실체로 인정하지 않으면 부활이라는 중요한 교리가 문제가 되기 때문에, 철학적으로 심신이원론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어요. 시간이 허락한다면 여기까지 블로그에서 다루어 볼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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