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춰락/서양 옛날 및 EU춰락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에 관한 포괄론적 해석과 우월론적 해석

by 로짘 2020. 1. 26.

아리스토텔레스는 (1) 인간의 선(행복)은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라고 바라봄과 동시에 (2) 덕들이 여러 개라면 최선의 그리고 가장 완벽한 덕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에 대한 정의는 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 방향에서 해석된다. 하나는 포괄론적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우월론적 해석이다. 포괄론적 해석은 덕을 행복을 이루는 좋은 것으로 간주되는 다양한 모든 덕 전체로 해석한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의 두 종류인 성품적 덕지적인 덕을 인간적인 선으로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고 행복은 이러한 다양한 덕들 모두를 포괄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월론적 해석은 덕을 sophia와 같은 하나의 덕에 의해 이루어지는 관조적 삶이라고 해석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완벽한 행복sophia라는 단일한 덕에 의해 이루어지는 관조적 활동이라고 언급한 측면에 근거를 두는 해석이다. 다시 말해, 이 입장에 따르면 이론적인 삶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다.

 

포괄론자와 우월론자의 덕에 대한 해석이 대립되는 지점은 앞서 제시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에 대한 규정에서 (2) ‘덕들이 여러 개라면 최선의 그리고 가장 완벽한 덕을 따르는 것이 행복이라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서 더 자세히 살펴보자.

포괄론자들은 이 문장의 전건을 여러 덕들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후건을 행복은 완전한 덕에 따른 완전한 활동이다라고 여기며 여기서 완전한여러 덕 전체이지 sophia와 같은 하나의 우월한 덕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월론자들은 최선의 그리고 가장 완벽한 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어떤 덕은 배제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인데 포괄론자들은 이러한 측면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배제성의 문제라고 하자. 우월론자들은 최선의 가장 완벽한 덕을 sophia라고 바라 볼 경우 배제성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월론이 포괄론 보다 더 올바른 입장인가? 포괄론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포괄론자들은 최선의 그리고 가장 완벽한 덕을 따라야 한다는 부분을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능논증(ergon)에서의 입장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포괄론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능논증에서 인간의 고유한 활동으로서의 ergon을 이성적 능력에 따른 활동 전체로 바라보지 어느 하나의 덕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덕은 sophia뿐만이 아닌 인간의 이성적인 부분에 속하는 성품적 덕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최선의 그리고 완벽한 덕sohpia라는 우월론자의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ergon 논증을 고려하면 행복이란 인간의 고유한 활동으로서의 ergon에 따른 삶이다. 이는 인간 영혼 중의 이성을 가진 부분인 사고능력과 실천능력이 그 각각의 고유한 덕에 따라 잘 그리고 훌륭하게 발휘된 것으로 말할 수 있다. 또한 여기서의 고유한 덕이란 지적인 덕과 성품적인 덕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sophia만이 최상의 덕이라는 우월론적 입장이 옳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포괄론적 입장은 우월론자들이 제시한 배제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결점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포괄론적 입장에서 배제성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다.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에서 덕을 외적 선까지 포함한 것으로 보지 않고서도 외적 선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의 의미에서 배제되지 않음을 주장할 수 있다. 각기의 덕들 간에도 배제되고 배제되지 않는 덕들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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