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향연의 주제는 에로스이며 소크라테스가 디오티마에게 들었다는 에로스에 대한 얘기를 중심으로 애지로서의 철학이 논의된다. 소크라테스의 순서에 앞서 아가톤은 에로스를 온갖 것들의 원인이고 좋은 것들이고 모든 신들보다 먼저 있었던 것이라는 이야기를 매우 아름답게 표현한다. 그는 그의 대화 이전의 철학자들이 에로스를 단지 화려하고 아름답게만 꾸몄다고 비판한다. 그는 먼저 에로스가 지향적 본성을 지녔음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에로스는 어떤 것에 대한 에로스’라는 것이다. 에로스가 어떤 것에 대한 에로스라는 것은 어떤 것을 욕구한다는 것이고 욕구한다는 것은 자신이 결여한 것을 욕구하는 것이므로 에로스는 자신이 결여한 것을 욕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이므로 에로스가 결여한 것은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또 좋은 것들 역시 아름답기에 에로스는 좋은 것들도 결여하고 있다. 즉,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과 좋은 것을 부족해하고 욕구한다.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과 좋은 것을 결여한 것이니 아름다운 것도 좋은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이제 소크라테스는 디오티마로부터 들은 에로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디오티마가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에로스는 불멸하는 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음이 운명지워진 필멸자도 아닌 중간적 존재이다. 이러한 에로스의 특성은 그 출생에 기인하는데, 에로스의 어머니는 빈곤의 여신인 페니아이고, 그 아버지는 방책의 신인 포로스이다. 이 때문에 에로스는 한편으로 빈곤하고 한편으로 방책을 통해 용케 살아남는 그러한 존재이다. 이러한 존재를 디오티마는 다이몬(daimon)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역할은 신과 인간의 매개자로 신의 말을 인간에게 전달하고, 해석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들에게 신에게 걸맞는 완전함에 대해 진술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다. 이들은 신이 아니기에 아름답지 못하고, 그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자들이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아가톤의 진술에 반박할 때 사용하던 무엇인가를 욕구하는 사람은 그 욕구하는 바가 결여된 자라고 한 것과 상응한다. 그렇기에 이 중간적 존재는 아름다움을 희망하고, 이 아름다움 중에 역시 지혜도 아름다운 것이기에 지혜 역시도 희망한다. 이 지혜를 희망하는 이유도 이들이 신과 같은 완전한 지혜를 소유한 자도 아니고, 그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지 조차 못하는 무지자도 아닌, 완전한 지혜와 무지자의 중간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에로스는 지혜를 사랑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에로스가 가진 특성은 인간이 가진 철학함의 속성과 같다. 인간은 완전히 지혜롭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무지하지도 않은 중간적 존재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완전한 지를 갈망하고 이를 위해 끊임없는 고양을 추구한다. 이 소크라테스 진술의 후반부에는 불멸성에 대한 인간의 추구에 대한 이야기가 제시된다. 이 불멸성의 추구는 명예로 혹은 출산을 통해 자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더 나은 것을 위한 교육의 문제로까지 제시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향연에서 제시되는 철학의 의미는 인간적 한계 조건 속에서 인간이 왜 지혜를 추구하고, 철학을 할 수 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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