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개별자들이 존재하는 현상계와 개별자들이 존재 근거가 되는 이데아계를 분리시킨다. 현상계의 개별자들 각자는 그것들에 대한 이데아가 있고 이 개별자들은 이데아계에 의존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기에 이데아계는 현상계의 존재의 원인이 된다. 현상계의 개별자들은 우리 감성으로 알 수 있는 것인데 반해 이데아계에 있는 것은 오직 지성(nous)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이러한 이데아들 중에서도 모든 이데아의 본(paradeigma)이 되는 최상의 이데아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좋음(to agathon)의 이데아이다. 여기서 플라톤의 태양의 비유가 시작된다.
플라톤은 좋음의 이데아가 지닌 내용이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말할 수 없기에 태양과 좋음의 이데아를 유비 관계에 놓고 이를 설명한다. 이것이 태양의 비유이다. 태양은 가시적 세계의 보이는 것들(빛, 색깔)과 보는 힘(시각)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가시적 실체들의 생성과 성장의 원인이 된다. 마찬가지로 좋음의 이데아는 가지적 세계에서 인식되는 것들(진리, 실체)과 이를 보는 힘인 지성을 통한 인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가지적 실체들의 생성과 성장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태양이 그 자체로 생성이 아니듯 좋음의 이데아 역시 인식되는 것들에 대해 그 지위와 힘에 있어 그 존재를 초월한다.
태양의 비유를 통해 좋음의 이데아를 유비적으로 알 수 있었다면 플라톤은 선분의 비유를 통해 인식의 분할과 존재의 분할에 대해 설명한다. 플라톤은 아래와 같이 선분을 서로 다른 크기로 분할하여 가시계와 가지계를 구분하며 e에서 a로의 수직선은 연속적인 것이며 매 지점마다 어떤 정도의 지식이 존재함을 나타낸다.
이렇게 플라톤은 선분의 비유를 통해 인식의 분할과 존재의 분할을 설명한다.
태양의 비유와 선분의 비유를 통해 좋음의 이데아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인식과 존재에 대한 플라톤의 견해를 알 수 있었다. 이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이데아와 현상계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철학자의 과제가 나타난다. 동굴 안의 세계는 가시적 현상계이고 동굴 밖의 세계는 지성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이데아계이다. 동굴 안에서는 어릴 때부터 결박당하여 앞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이들 뒤쪽 불빛에 의해 벽면에 투영된 그림자를 실재로 여기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들 중 한명이 결박에서 풀려나 불빛이 있는 곳을 보게 되었고 동굴 밖을 나가게 된다. 이 사람은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왔기 때문에 바로 잘 볼 수는 없지만 곧 빛에 익숙해진다. 이 사람은 처음에는 그림자를 가장 쉽게 보았지만 물속에 비친 상들을 보게 되고 다음으로 실물을 보게 된다. 그런 후에 하늘에 있는 것들과 하늘 자체를 보게 되고 종국에는 태양 자체를 보게 된다. 이렇게 이 사람은 태양이 보이는 영역의 모든 것들을 존재하게 하는 원인이 태양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동굴 안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들을 불쌍하게 여기게 된다. 그래서 그는 다시 동굴로 들어간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왔으니 일단은 잘 보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박당한 사람들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실재가 아니라 상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으며 오히려 눈을 버려왔다고 비난한다. 이 사람이 결박당한 사람들을 밖으로 이끌려고 하면 결박된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껴 이 사람을 죽이려고까지 할 것이다.
이렇게 플라톤은 선분의 비유를 통해 인식의 분할과 존재의 분할을 설명한다.
결박된 사람이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을 보게 되는 과정은 선분의 비유에서 언급된 각 과정과 일치한다. 말하자면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보게 된 것이 태양이었듯이 인식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종적으로 보게 되는 것은 좋음의 이데아인 것이다.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을 보게 된 사람 즉, 좋음의 이데아를 보게 된 사람은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의 결박을 풀어 주려한다. 그는 사람들을 가상의 세계계에서 해방시켜 참된 세계로 인도해 주고자하는 철학자이다. 다시 말해, 철학자의 과제는 사람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을 가상의 세계에서 참된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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