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덕쥘

한글의 우수성

by 로짘 2020. 3. 3.

I. 한국어? 한글?

 

영어 논문 쓰기가 너무 어려워 영어권 친구에게 영어는 너무 어려워.’라고 말하자. 그 친구는 한국어(Korean)는 더 어려워.’라고 대답했다. 느닷없이 애국심이 발동했던 탓일까? 한국인은 모두 한국어를 쓸 수 있다(No one can't write Korean in Korea)는 말을 하며 영어가 더 어렵다는 주장을 하자 그 친구는 영어와 한국어의 띄어쓰기를 예로 들며 한국어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분에 못이긴 필자는 인터넷을 통해 한글에 대한 검색을 해보았고 놀랍게도 라틴어 다음으로 어려운 말, 한국어라는 칼럼을 통해서 한국어영어보다 더욱 어려움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칼럼의 목적은 한국어의 풍부한 표현력과 역사성 그리고 고급스러움에 대해 알리는 것이었지만 필자가 느낀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마도 당시 필자의 혼란은 한국어한글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해서 일어난 당혹감이었을 것이다. 한글과 한국어는 다르다. 이는 한자와 중국어가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어는 한국에서 쓰는 말을 의미하는 반면 한글은 글자의 이름을 말한다. 이렇게 한글이 쉽다.’한국어가 쉽다.’의 차이를 파악하지 못한 필자의 당혹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말과 글은 너무도 긴밀히 연결되어서 이 둘을 따로 생각하기 힘들다. 말이 어려운 만큼 그것을 표현하는 글 역시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한국어를 익히는 것은 어려운데 한글은 익히기 쉬운 이유는 무엇일까?

 

II. 쉬운 한글

 

1. 한글은 발명품이다?

 

한글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던 필자는 한글에 대한 무수한 찬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이러한 찬사가 한국인 학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국인 언어학자에 의한 것이니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를 판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지금 인터넷 검색창에 유네스코 한글혹은 유네스코 세종대왕을 쳐보길 바란다. 아마도 유네스코 지정 문맹퇴치공로상 세종대왕상’,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 훈민정음’, 그리고 유네스코 지정 한글을 소수민족의 언어로와 같은 정보가 여러분들의 컴퓨터 화면을 채울 것이다. 유네스코는 19896,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정신을 드높이기 위해 문맹퇴치 공로상의 하나인 유네스코 세종대왕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제정했다고 한다. 이렇듯 한글은 세종대왕의 백성들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창제되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창제의 의의는 훈민정음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이가 많다. 내가 이것을 매우 딱하게 여기어 새로 스물여덟글자를 만들어 내노니 사람마다 쉽게 익히어 일상생활에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할 따름이니라.’

 

오랜 역사를 두고 점차로 진화되어온 다른 문자에 비해 한글은 발명되었다. 그리고 이는 읽고 쓰지 못하는백성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져 익히기 쉽게 만들어졌다. 아마도 한글은 이러한 취지에서 발명되었기 때문에 한국어의 어려움과는 별개로 쉽게 익힐 수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또 다른 의문이 떠오른다. 발명품이라고 다 쉽게 익힐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가전기기만을 보더라도 두꺼운 사용 설명서가 따라다니니 말이다. 아무래도 한글이 쉬운 이유는 그것이 발명되었다는 사실 보다는 그것이 발명된 원리를 파헤쳐봄으로써 알 수 있을 것 같다.

 

2. 한글, 9자만 알면 끝!

 

미국의 한 한인촌의 목사님은 한글을 매우 쉽게 가르치기로 소문이 났다고 한다. 아무리 무식한 사람도 하루만 공부시키면 한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그 방법이 궁금할 따름이다. 하지만 목사님의 한글 교육 비법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한글의 글자는 기본적으로 가획의 원리를 가진다고 한다. ‘가획의 원리, , , , 와 같은 초성이라 불리는 기호에 획을 하나씩 더하여 글자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말하는데 이는 훈민정음에도 매우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현상을 본뜬 것이요. 혓소리 ㄴ은 입의 형상을 위 잇몸에 닿는 형상을 본뜬 것이요. 입술소리 ㅁ은 입의 형상을 본뜬 것이요. 잇소리 ㅅ은 이의 형상을 본뜬 것이요. 목구멍소리 ㅇ은 목구멍의 형상을 본뜬 것이다. ㅋ은 ㄱ보다 소리가 좀 거세게 나는고로 획을 더한 것이니 ㄴ에서 ㄷ, ㄷ에서 ㅌ, ㅁ에서 ㅂ, ㅂ에서 ㅍ, ㅅ에서 ㅈ, ㅈ에서 ㅊ, ㅇ에서 ㆆ, 에서 그 소리에 따라 획을 더한 뜻은 다 같다. 그러나 오직 ㅇ 만은 다르게 하고 반혀소리 ㄹ와 반잇소리 도 역시 혀와 이의 모양을 본떴으나 그 모양을 다르게 하였을 뿐 획을 더한 뜻은 없다.’

한글을 처음 배웠던 시절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 , , , , , , ...’를 외우며 한글을 배웠었다. 하지만 가획의 원리를 사용해 을 배우면서 을 익히고 을 배우면서 ’, ‘을 익힌다면 한글을 보다 쉽게 익힐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아마도 그 목사님은 이 가획의 원리를 한글 교육에 접목시킨 것인가 보다.

 

정경일 외12명, 『한국어의 탐구와 이해』, 박이정, 2002, p65, p85


그럼 이제 가획의 원리를 체험해 보자
. 위 표는 한글의 초성체계를 발음이 되는 위치에 따라 분류한 도표이다. 이 표에서 경구개란 입천장을 말하고 연구개란 입천장 뒤쪽 연한 부위를 말한다. 이제 각자를 발음해 보자. ‘, , , , 는 소리를 낼 때마다 혀가 앞니 뒤의 잇몸과 맞닿음을 알 수 있다. ‘, 의 경우는 혀가 입천장에 가깝게 접촉하고 , , , 의 경우는 혀끝이 입천장 뒤의 연한 부위를 향한다. 이렇게 한글은 기본이 되는 글자(기본자)와 획을 더한 글자(가획자)간의 구조가 소리를 내는 구조와 유사하게 만들어져 있다. 기본자와 가획자 간에 소리를 내는 방법이 유사하니 글자를 외우는데도 유용함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ㄱ, , , , , , , , ㆍ의 9자만 알게 되어도 모든 글자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던 걸까? 유네스코가 1997101일 한글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한다. 서구에서는 20세기에 와서야 완성된 음운론의 체계를 세종대왕은 500년이나 앞선 15세기에 세웠었고 이 체계 위에서 한글이 창제된 것이다.

 

서구 보다 500년이나 앞선 음운론에 대한 연구로부터 창제된 한글. 그러한 한글이 쉽게 익혀지는 이유는 어느 정도 해소된 것 같다. 하지만 필자의 욕심이 과한 것일까? 한글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한 가지 장점을 더 자랑하고 싶어졌다.

 

 

 

 

 

 

III. 세종대왕의 백성 사랑에서 인류애로

 

1. 세계 유일의 자질 문자 한글

 

영국 리즈대학 음성언어학과 제프리 샘슨(Geoffrey Sampson) 교수는 문자 체계(Writing System, 1985)에서 세계의 문자를 분류했다. 그에 따르면 문자는 표의문자에서 표음문자로, 표음문자는 다시 음절문자에서 음소문자의 형태로 발전한다. 즉 한자는 대표적인 표의문자가 될 것이고 일본문자인 가나는 음절문자 그리고 영어는 음소문자로 분류 된다. 그런데 샘슨 교수는 한글을 어느 분류에도 속하지 않는 자질(feature)문자로 분류했다. 그는 한글은 과학적으로 볼 때 의심할 여지없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라며 한글만을 위해 자질문자라는 조항을 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한글은 다른 언어 보다 뭔가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단연 발명된 문자라는 사실이나 가획의 원리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한글이 가지고 있는 다른 특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이름이나 지명을 영어로 적어서 전달해 보았다면 한글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10여년전 일본 여행 중의 일이다. 오다이바에 있는 오에도온센모노카타리온천을 찾는 중이었고 지나가는 일본인에게 영어로 길을 물은 적이 있었다. 당시는 온천 이름을 몰라 영어로 적어달라고 부탁했었는데 ‘oeidoyonsenmonokatari’라고 적어 주어 상당히 난감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번 읽어 달라고 부탁해 영어 밑에 한글로 오에도온센모노카타리라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일은 필자가 한글에 친숙해서 일어나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앞서 언급했다시피 한글은 정교한 음성학적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소리 문자다. 특히 우리가 실제 말하고 청취할 수 있는 음성의 최소 단위를 음절이라고 하는데 한글은 각 글자를 음절 단위로 분류하여 말을 글로 전달하는데 편리하다. 만약 그 일본인이 ‘-’ 를 사용해서 ‘o-ei-do-yon-sen-mo-no-ka-ta-ri’와 같이 적어주었다면 굳이 한글로 이름을 다시 적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한글은 소리를 문자로 표현하는데 있어 (적어도 영어 보다) 풍부한 표현력을 지니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앞의 예에서 ‘ri’의 경우 역시 혹은 라이로 읽힐 수 있으나 한글에서는 이러한 혼동이 없다. 실제 김형배 한글 문화연대 학술위원은 한글 창제 당시 지금은 없어진 4글자와 중국어를 적기 위한 6자 등을 조합하면 무려 399억자를 만들 수 있다정인지가 훈민정음 해례 서문에서 바람 소리, 학 울음소리, 닭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도 적을 수 있다고 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라고 한글의 풍부한 표현력을 예찬했다.

 

샘슨 교수가 한글을 자질문자로 분류한 것은 한글이 가진 이러한 장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읽고 쓰기 편한데다 풍부한 표현력을 가졌다는 장점이 부각되어 최근에는 한글을 소수민족의 언어로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2. 소수민족의 언어를 위한 한글

 

현재 유네스코의 후원 아래 하계언어학교(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 이하 SIL)는 전 인류의 언어 다양성과 정보 이용의 공평성을 위하여 바벨 계획(Babel Initiative)’을 시행하고 있다. 이들은 언어의 사멸을 막는 것은 언어를 보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용자들의 세계관과 가치체계, 문화 등 인류문화를 보존한다는 측면에서 그 중요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방향에서 각 언어의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문자를 개발해 개별 언어 자료를 문서화하는 것은 인류 문화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일이 된다. 현존하는 6900여개의 언어 중 300여개를 제외한 6600여 언어가 문자가 없는 언어로 알려져 있으며, 이 중 5800여개는 사멸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한 언어의 사멸은 단순히 그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언어로 표현되던 모든 문화유산 및 지식의 상실을 의미한다는 데서 이 프로젝트의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1934년 창립된 SIL은 매년 지원자들에게 현장 언어학 훈련을 시킨 뒤 이들을 사멸 위기에 처해 있는 언어 사용 지역에 파견한다. 이들은 일정 기간 동안 지역 주민과 함께 생활하며 해당 언어와 문화의 보존을 위한 문서화 작업을 공동으로 수행한다. SIL은 문서화 작업에 있어 이전에 사용하던 로마자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국제음성문자(IPA)를 사용하는데 이는 지나치게 정밀하고 복잡하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 애초부터 말소리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데 중점을 두고 개발된 문자 체계이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지며 체계가 너무 복잡하여 배우기 힘들다는 단점도 발견된다. 이에 비해 정교한 음성학적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한글은 기존의 기호만으로도 비교적 많은 음소를 표시할 수 있고, 한 문자가 기본적으로 한 음소만 표기하므로 표기에 혼란을 줄 염려가 적다. 또한 모아쓰기를 통해 음절 경계를 명확히 보여주는데다 배우기도 쉽고 쓰기도 편하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한글의 이점을 어느 정도 수용했던 것 같다. ‘바벨계획을 추진할 당시 유네스코는 소수민족의 말을 한글로 쓰도록 하는 것은 소수언어의 사멸을 막고 언어의 다양성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할 것이라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소수 민족의 언어로 한글 보급이 실현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러한 움직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글이 보급된다면 우리 문화유산이 세계로 수출된다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큰 의의를 지닐 것이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정신의 연장선상에서 소수 민족의 문화 보전과 발전을 돕는 한글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배우기 쉽고 풍부한 표현력을 지닌 한글이 세계의 언어 문화유산을 보존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개연성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칼럼에서 한글을 수출하자고 난리다. 한글을 통한 광고 효과가 가지는 경제적 부가가치가 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한번쯤은 읽고 쓰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백성 사랑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소수 민족의 문자로 보급된 한글이 그들의 문화를 보존하고, 세종대왕의 백성 사랑이 인류애로 발전되는 모습을 기대한다.

 

 

 

참고문헌

 

김미경,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한글, 자우출판사, 2006

김영욱, 한글과 언어문화 강의노트

정경일 외12, 한국어의 탐구와 이해, 박이정, 20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