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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쥘

니체가 옳았다?

by 로짘 2020. 3. 3.

영국 유력 일간이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니체가 옳았다. 역경이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이 기사는 미국 뉴욕의 버팔로 대학 교수 마크 시리(Mark D. Seery) 박사의 연구를 소개하며 니체가 옳았다고 주장합니다. 기자는 어떤 연유로 이런 주장을 하게 되었을까요? 흥미로우니 조금 더 자세히 기사를 들여다보겠습니다.

 

텔레그레프에 게재된 기사 원문을 보실 분들은 사진을 클릭!!

기사 제목: 니체가 옳았다. 역경이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
 
독일 철학자 니체의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말은 역경에 직면했을 때, 회복(resilience)을 북돋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 말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는 과학적 가치(merit) 또한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폭행이나 가족의 사망 혹은 자연재해와 같은 트라우마를 겪는 것은 극단적인 심리적 피해를 줄 수 있지만 작은 정도의 트라우마는 사람들의 회복력(resilience)을 높혀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버팔로 대학의 마크 시리 박사는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죽이지 않는 것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는 격언을 듣습니다만 이런 당연하게 들리는 많은 말들이 심리학적 근거가 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실제로 많은 실험들은 비참한 인생 경험이 사람들에게 해롭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식이나 부모의 죽음, 자연재해, 폭행 및 성적 학대 혹은 부모와의 사별과 같은 심각하게 힘든 경험은 심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연구는 인생을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하죠. 하지만 이것은 실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지도 않습니다.”
 
시리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많은 역경을 겪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심리적으로 허약했으며 트라우마를 전혀 겪지 않은 사람들도 유사한 심리적 문제를 가졌습니다. 오히려 심리적으로 가장 강한 사람은 약간의 부정적인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만성 요통을 겪는 사람들 중, 조금 어려운 역경을 겪은 사람들의 회복이 제일 빨랐습니다. 반면에 많은 역경을 겪거나 아무런 역경도 겪지 않은 사람들은 회복이 더뎠습니다.
 
시리 박사는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이를 극복할 능력을 기르는 기회를 얻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부정적 경험들은 사람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고 추후의 어려움을 더 잘 다룰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시리 박사는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원할 때, 그들로부터 어떻게 도움을 얻을 수 있는지를 배움으로써 더 강한 사회적 인맥을 가진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것을 일종의 어려움 속의 희망이라 생각합니다. 나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무조건 불행한 것만은 아닌 것이거든요.”
 
역경과 회복력에 대한 시리 박사의 논문은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의 최근호에 게재되었다.

해당 기사는 니체의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한다.”는 말이 과학적 실험을 통해 증명된 것처럼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크 시리 박사의 연구를 소개하죠. 그런데 시리 박사는 너무 강한 역경을 겪거나 아무런 역경을 겪지 않은 사람이 약간의 역경을 겪은 사람 보다 정신적으로 더 허약하다고 주장합니다. 또 이러한 얘기를 하기저네 니체의 말과 같은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격언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기사를 읽어 나가면 꼭 시리 박사의 연구가 니체의 격언을 증명하는 것처럼 시리 박사의 말을 인용합니다. 특히 기사는 스트레스를 겪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더 강한 인맥을 형성한다.”는 시리 박사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시리 박사의 연구가 니체의 격언을 뒷받침하는 듯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시리 박사의 연구는 정말 니체의 격언을 뒷받침하는 것일까요?

 

오늘도 고통받는 프리드리히 니체

 

물론 그렇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많은 기사들이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그럴 듯한 제목에 애매한 문장으로 독자를 현혹합니다. 또한 위 기사처럼 명확한 논지를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독자를 혼란에 빠트립니다. 그래서 기사가 지닌 문제점 몇 가지를 나열하는 것으로 이 포스팅을 마칠까 합니다.

 

  • 문제점 1. 가장 큰 문제는 니체의 격언이 지닌 의미가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해당 격언의 원본은 인생의 사관학교에서,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였으며 이는 그의 저서 우상의 황혼의 첫 장 잠언과 화살에 실린 여러 짧은 문구 중 하나 였습니다. 다시 말해, 니체는 짧은 문장을 던져 놓고 아무런 해석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잠언 중에는 그대 스스로를 도우라, 그러면 누구든지 그대를 도울 것이다.”와 같은 기독교의 격언도 있었는데요. 니체가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판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잠언과 화살에 소개된 여러 격언들은 니체가 부정하는 잠언들의 목록일 수도 있습니다. , “인생의 사관학교에서,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고통과 아픔을 중시하며 이를 성장통이라 여기는 마초적 사고를 조롱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생각할 때,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가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반대되는 상황으로 사용되는 것이 됩니다. 이런 사고를 버리라는 것이 니체가 의도했던 것이라면 위 텔레그레프에 소개된 실험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 되는 것이죠. 이렇게 사실은 왜곡되나 봅니다.

  • 문제점 2.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가 니체가 실제로 받아들이고 싶었던 잠언이라고 하더라도 이 잠언 자체가 애매합니다.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요? 생물학적으로 나를 죽이지 않는 여러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마크 시리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지나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약간의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 보다 정신적으로 더 허약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옳다면 나를 생물학적으로 죽이지 않은 지나친 트라우마가 나를 더 약하게 한 것이므로 니체의 격언이 옳지 않음이 보여진 것입니다. 텔레그레프 기자는 마크 시리 박사의 연구를 홍보해 주고 싶었을테지만 니체를 끌어들임으로써 사실을 왜곡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 문제점 3. 나를 죽이지 않는 것심리적으로 강한 트라우마르 겪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아닙니다! 시리 박사의 연구는 심각한 트라우마 뿐만이 아니라 아무런 트라우마를 겪지 않은 사람도 약간의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 보다 심리적으로 허약하다고 했습니다. ‘나를 죽이지 않는 것아무런 트라우마도 겪지 않음으로 생각한다면 시리 박사의 연구는 니체의 잠언을 비판하는 것이 됩니다. 니체가 틀렸다는 것을 보이는 연구가 되는 것이죠.

실제 마크 시리(Mark Seery) 박사의 연구 논문인 “Resilience: A Silver Lining to Experiencing Adverse Life Events?”391쪽을 읽어 보면, 시리 박사와 동료들이 세운 가설은 이전에 낮은 정도(low)이거나 온건한(moderate) 정도의 역경에 노출된 사람들이 높은 정도(high)의 역경이나 아무런 역경에 노출되지 않았던 사람들 보다 더 강인하며 미래의 역경을 더 잘 다룬다.”는 것입니다.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의 의미가 적절한 정도의 역경이라고 정의 된다면 이 실험 결과는 니체의 격언을 뒷받침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 1에서도 지적했듯이 실제 니체가 어떤 의미로 이러한 얘기를 제시했는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실들이 단순한 흥밋거리를 위해 왜곡되고는 합니다. 더군다나 텔레그레프는 영국 유력 일간지이기도 하고 기사는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 칼럼의 기사입니다. 그럼에도 흥미를 끌려던 기자에 의해 마크 시리 박사의 연구와 니체의 철학적 입장은 오늘도 왜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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