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와 의무론이 지니는 한 가지 차이점은 의무론적 제한(deontological constraint)이다. 이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행위들의 집합을 규정한다. 의무론적 제한은 결과주의적 입장을 고수할 경우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유로 허용될 수 있는 행위들을 제지하는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노예제도나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낸다는 이유로 정당화되는 살인 등의 사례를 제지하는 기능을 한다. 의무론적 제한과 관련한 핵심적 개념으로 ‘행위자 중심적 특권’(agent-centered prerogatives)이 있는데 이는 도덕적 주체들이 경우에 따라서 (특히 의무론적 제한을 넘어서는 경우) 도덕적 희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우선적인 선택권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1명을 죽임으로써 죽을 위기에 처한 5명을 살릴 수 있는 상황에 처한 경우 행위자는 1명을 죽이는 선택을 강요당하지 않을 우선권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I. 의무론적 제한과 side-constraint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의무론적 제한을 side-constraint로 이해했다. 이는 의무론적 제한에 해당하는 행위들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한다. 의무론적 제한을 side-constraint로 이해하는 방식은 의무론적 제한의 강한 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완화된 형태는 goal-directed로 이는 의무론적 제한에 위배되는 수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goal-directed의 입장에서는 의무론적 제한에 위배되는 전체적인 수가 줄어드는 경우에 한해서 의무론적 제한을 위배하는 것이 허용된다. 예를 들어, 한 행위자가 무고한 시민 1명을 죽이고 다른 무고한 시민 5명을 살리는 상황과 무고한 시민 1명을 죽이지 않는 대신 다른 무고한 시민 5명이 죽게 내버려두는 두 가지 상황 중 한 가지 상황만 가능한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을 고려해 보자. side-constraint의 경우에는 5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결과와는 무관하게 살인은 의무론적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무고한 시민 1명을 죽이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goal-directed의 경우에는 의무론적 제한의 한계선을 넘은 상황에서 사실상 의무론적 제한의 효력을 잃기 때문에 최선의 결과를 낳는 쪽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경우, 의무론적 제한이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한계선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
II. 의무론의 역설.
토마스 네이글은 적어도 어떤 경우에는 살인이 절대로 허용될 수 없다고 여긴다는 측면에서 side-constraint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의무론은 절대주의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무고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여기서의 ‘무고한’은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이 없는’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의도’(deliberate) 개념을 도입해 ‘무고한 사람을 고의로(deliberately) 죽여서는 안 된다’는 정식을 제시한다.
공리주의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의무론적 제한을 우리가 왜 지녀야하는 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공리주의(혹은 쾌락주의)자들은 쾌락이나 고통 등을 행위자 중립적(agent-neutral)인 가치(혹은 이유)로 여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행복의 총합을 극대화시키는 행위만이 옳다고 여기며 이러한 행위의 이유는 제 3자가 모두 갖는 이유가 된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행위자 중립적 이유는 비인격적(impersonal) 요구에 근거한다. 의무론자는 의무론적 제약을 제시해주는 이유로 행위자 상대적(agent-relative) 이유를 제시한다.
먼저 네이글은 행위자 상대적 이유를 세 가지로 나눈다. 먼저 자율성의 이유(reasons of autonomy)는 어떤 계획(project)에 근거한 이유로 내가 윤리학에 관한 책을 쓰겠다는 인생 계획을 갖고 있는 한 나는 윤리학을 공부할 이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율성의 이유는 선택적(optional)이다. 다음으로 특수 책무(special obligation)의 이유는 행위자간의 특수한 관계성에 근거한 이유로 철수의 아들과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졌을 경우, 철수는 아들을 먼저 구할 것인데 이 경우 철수는 아들과의 특수한 관계에 의해 모르는 사람 대신 아들을 구할 이유를 지닐 수 있다. 마지막이 의무론의 이유(reasons of deontology)이다. 이는 행위자 상대적 이유이지만 행위자의 계획에 근거하지 않기에 선택적이지도 않다. 문제는 의무론의 이유가 행위자 상대적임에도 ‘무고한 사람을 고의로 죽여서는 안 된다’와 같은 보편적 제약을 의무론적 제약으로 제시한다는 것이고 이 지점에서 공리주의자는 ‘의무론의 역설’이라고 불리는 상황을 통해 그러한 제약이 왜 그리고 어떻게 제시될 수 있는지를 물을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예를 생각해 보자. 알프레드 노벨은 건축에 도움이 되기를 원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려 한다. 하지만 노벨의 주변 사람들은 이 다이너마이트를 다수의 사람을 죽이는 대량살상무기로 사용하려 한다. 만약 노벨의 친구인 제임스가 노벨을 죽이지 않는다면 노벨 주변의 사람들이 이를 대량살상무기로 사용해 무수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게 될 것이다. 노벨은 어떠한 살상도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네이글의 정식은 또한 무고한 사람을 의도적으로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제임스가 노벨을 죽이지 않게 된다면 무수한 무고한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의무론적 제약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행위가 오히려 그 제약을 거스르는 훨씬 많은 경우를 낳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의무론의 역설’이라고 불리며 공리주의자는 이를 통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최대선을 실현하기 위해 제임스는 노벨을 죽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입장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반가치를 부여하고 보다 가치롭기 위해서는 죽이는 행위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직관에 의존한다. 네이글은 우선적으로 의무론적 제한이 어떤 행위에 반가치를 부여하고 가치를 총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무고한 사람을 고의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의무론적 제약을 우리는 지니기 때문에 제임스가 노벨을 죽이는 행위 역시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답을 지닌다고 하더라도 행위자 상대적인 이유인 의무론적 이유가 어떻게 보편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네이글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행위자인 내가 무고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악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살인이 옳지 않음을 설명한다. 다시 말해, 행위자 상대적인 주관적 관점을 도입해 이를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먼저 네이글은 살인을 의도적인 것으로 해석했을 때, 의도성과 살인의 악행(evil)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만약 행위자가 X를 의도적으로 추구한다면 행위자의 행위는 X에 의해 안내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행위를 수행하던 도중에 상황이 여의치 않아 X를 성취하기 힘들어질 경우 행위를 조정하여 X의 성취를 보장한다. X에 ‘악’을 대입해 넣는다면 X를 의도하는 것은 곧 악을 행한다는 것을 보장하며 이에 관한 행위는 악에 의해 안내된 것이므로 의도성과 악의 관계성이 설명된다. 또한 살인과 같이 상대방에게 해를 입힌다던가 하는 악은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X를 하지 말아야 할 내재적인 규범적 제약을 지닐 수 있다. 그래서 X를 의도한다는 것은 X를 회피해야 할 것을 의도하는 것이 된다. 즉, 주관적 시점은 행위자와 피해자 모두에 의해 채택된다. 그래서 의무론적 이유는 둘 모두가 있어야 설명이 가능하다. 피해자의 주관적 시점에 따르면 ‘다른 사람이 나를 죽이는 것은 나의 삶에 악을 가져오는 것’이 된다. 즉, 공리주의자들이 고려하는 순수하게 행위자 중립적인 이유를 채택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네이글의 입장에 대해 행위자의 관점을 채택한다는 것도 결국 더욱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악을 회피해야 한다”는 비인격적 요구(agent-neutral)에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요구는 자신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피해자의 요구와는 독립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느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고 이러한 측면에서 피해자와 행위자간의 관계성에 대한 상호작용은 잉여적이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의무론적 이유의 보편성과 의도와 행위의 허용가능성에 대한 물음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한 가지 대안적인 설명은, 어떤 행위를 할 행위자의 상대적 이유는 다른 사람이 그 행위자의 행위를 간섭하지 않는 비간섭 개념으로 제약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행위자 상대적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공유되지는 않는다. 내가 철학을 공부할 이유를 누구나 공유한다면 내가 철학을 공부할 이유를 갖는 순간 피겨스케이트 선수 김연아는 철학을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김연아도 어떤 이유를 공유한다고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내가 철학 공부를 할 이유를 갖는다면, 김연아는 별 다른 이유가 없는 한 내가 철학 공부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이유를 갖는다. 다시 말해, 행위자 상대적 이유에 있어 다른 사람이 갖는 무언가를 할 이유의 규범적 힘에 관한 mode를 비간섭(non-interference) 개념으로 제약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무고한 다른 사람을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죽이지 말라는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이 요구는 다시 죽임을 당하지 않을 이유에 의해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는 타인들의 이러한 이유를 특정한 방식으로 공유하기 때문에 그들을 죽이지 않을 이유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을 이유를 갖는 것은 다른 사람의 죽임을 당하지 않을 이유에 대한 응답(response)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무고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의무론적 제약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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