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토마스 스캔런의 계약주의
토마스 스캔론의 계약주의는 루소의 “사회 계약론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론이다.도덕률은 다른 사람들과의 가설적 동의(hypothetical agreement)에 의해 구성(contructed)되었다는 생각을 핵심으로 가지기에 도덕률에 관한 (국소적) 구성주의적 입장을 견지한다. 그는 계약주의에 있어 옳고 그름의 도덕을 고찰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은 나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를 물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러한 개별 행위의 정당화 가능성을 보기 위해 그 행위를 허용하는 원칙을 찾아야 하며 더불어 그 원칙을 다른 사람들이 합당하게 거절할 수 있는가를 물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그름에 대한 정식은 다음과 같다.
스캔론의 정식(Scanlon's formula): 행위 A가 그르다 iff A가 행해진 상황에서 그 행위가 누구에 의해서도 합당하게 거절될 수 없는 원칙들의 임의의 집합에 의해 허용되지 않을 경우이다. 이때의 원칙은 행위에 대한 보편적 규정으로써 잘 알려지고(informed) 자발적이며(unforced) 일반적인 동의를 얻은 것이다.
위와 같은 스캔론의 정식을 따를 때, 합당한 거절불가능성(reasonable non-rejectability)과 정당화 가능성(justifiability)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스캔론은 그의 계약주의가 (1) 도덕률에 관한 진리와 (2) 근본적인 도덕적 가치들 그리고 (3) 도덕률의 규범적 힘에 대해 모두 다룰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여긴다.
스캔런은 합당한 거절가능성이 본질적으로 상대적인 문제라고 여긴다. 예를 들어 어떤 행위 X가 철수에게 작은 즐거움(혹은 쾌락)을 가져오는 동시에 순이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해 보자. X를 허용하는 원칙을 P라고 할 때, 순이는 P가 수용될 경우 자신의 권리가 침해된다고 불평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한 X를 금지하는 원칙 Q를 고려해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철수는 Q에 대해 자신의 복리/복지 감소의 이유를 들어 이를 반대할 수 있다. 이 경우 우리는 이 두 종류의 이유들을 고려해 어떤 것이 더 강력한가에 대해 실질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래서 만약 P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Q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보다 강력하다는 판단이 성립한다면, 오직 이 경우에만 P가 합당하게 거절되는 것이다. 즉, 스캔런의 계약주의 논변에서 주어진 원칙 그리고 그것의 대안 원칙에 대한 합당한 거절은, 그 것들에 대해 관련된 당사자들 모두가 제안할 수 있는 반대 이유들을 숙고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여기서 몇 가지 사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합당하다’(reasonable)는 것은 ‘합리적임’(rational)과는 구분된다. 스캔론은 ‘합리적임’을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추구할 수 있는 도구적 합리성(instrumental rationality)으로 사용한다. 반면 ‘합당성’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모든 유관한 고려사항을 평가(assess)하고 취합(combine)하여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 판단을 규제하는 단일한 법칙은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방향에서 ‘합당하게 거부될 수 없는 원칙’은 어떤 행위를 정당화하는 이유들을 모은 것이라고 고려될 수 있고 이 ‘이유’는 통상적 이유(generic reason)로써 행위자의 복리 증진, 편애성, 공정성 등이 그것의 근거가 될 수 있으며 주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지니게 될 이유를 말한다. 또한 스캔론은 행위 당사자들이 제안된 원칙을 반대할 경우 이는 오직 개별 당사자만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다고 말한다. 파핏(Parfit)은 이를 ‘개별주의적 제한’(individualistic restriction)이라고 불렀는데 예를 들어, 철수가 방송국에서 다쳤을 경우, 철수를 구하려면 수백만명이 보는 월드컵 게임을 15분 동안 멈춰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만약 집단이 지니는 이유가 포함된다면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월드컵 게임을 계속 보기 위해 철수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원칙을 고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원칙은 철수 개인에 의해 합당하게 거절될 수 있다. 그렇기에 계약주의에 따를 경우 철수를 구해야 한다는 입장이 가능하며 이렇게 계약주의는 이유들간의 집합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개별주의적 제한조건의 수용은 집합적 사고의 거부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캔런은 계약주의가 결과주의의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스캔런의 계약주의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지니기도 하는데 먼저 확정적(definite)인 결론을 도출해 내는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결국 도덕적 주체는 실질적인 판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도덕적 진리에 관한 구성주의 일반에 대해 회의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들 역시 존재하며 상대주의 진영의 도전도 여전히 남는다고 한다.
- 잉여반론: 계약주의에 대한 한 가지 비판은 잉여반론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계약주의의 합당한 거절가능성은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어진 행위가 그른 이유는 그것이 갖는 특정한 속성만으로도 그것이 그른 것으로 판명되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러한 행위가 합당하게 거절될 수 있는 원칙에 의해 허용되었는가의 여부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 한다고 주장한다. 스캔론은 어떤 행위가 갖는 속성은 오직 그 행위가 어떤 원칙에 의해 그른 것으로 판명될 때에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르게 만들어 주는 속성(wrong-making property)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계약주의의 입장에서는 합당한 거절가능성을 통해서 어떤 행위가 그르다고 판단이 될 때에만 그 행위는 그름(wrong)의 속성을 지닐 수 있고 이러한 점에서 합당한 거절가능성의 원칙은 행위의 옳고 그름의 판단에 있어 잉여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 불확정성반론: 불확정성 반론은 스캔론의 계약주의가 확정적인 결론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계약주의가 합당한 거절의 근거로 고려하는 이유들의 범주가 불분명하며 이러한 이유들 중 어떠한 것이 더 강한 이유인지에 대한 기준 역시 존재하지 않기에 확정적 결론을 제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스캔론은 먼저 합당한 거절에 관한 이유들이 적절한 수준에서 일반화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불확정성반론과 유사한 문제점들은 계약주의만의 고유한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이에 대응한다.
참고. 스캔런의 계약주의와 칸트주의 계약주의의 차이: 칸트주의 계약주의는 모든 합리적(rational)인 행위자들이 동의할 이상적인 조건하에서의 원칙을 고려한다. 스캔런의 계약주의는 합리성과 합당성(reasonableness)을 구별해서 합당성을 도덕적 관점에서 설명되는 것으로 제한한다. 또한 합리적인 행위자들 모두가 동의할 원칙을 찾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합당하게 거절하지 않는 원칙을 찾는다는 점에서 행위자 상호간의 관계로부터 도덕적 가치를 찾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롤즈의 계약주의는 무지의 베일하의 원초적 입장에서 모두가 동의하는 원칙을 찾는 다는 점에서 칸트주의에 더 가깝다.
(2) 다수를 구해야 하는 원칙
철수와 영희가 고립되어 있는 섬 A와 순희가 고립되어 있는 섬 B를 생각해 보자. 강한 태풍이 몰려오는 상황이라 우리는 A와 B에 있는 사람들 중, 한쪽의 사람들만을 위험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 A의 철수와 영희를 구하는 것을 옳은 행위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는 ‘다수를 구해야 하는 원칙’으로 불린다. 결과주의자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집합적 추론을 통해 이 원칙을 상대적으로 쉽게 입증할 수 있지만, 그 추론 방식을 거부하는 비결과주의자들에게는 동일한 문제가 난제로 다가온다. 대표적인 비결과주의자인 스캔런은 자신의 계약주의의 틀 안에서 이른바 ‘균형파괴자 논변’을 고안하고, 이를 통해 다수를 구해야 하는 원칙이 합당하게 거절될 수 없음을 논증한다. 균형파괴자 논변이란 A 섬에 있는 철수와 B 섬에 있는 순이가 서로의 입장에서 구조될 원리(혹은 통상적 이유)를 지니고 있으며 서로는 서로의 이유를 합당하게 거절할 수 없을 경우 철수와 A 섬에 같이 있는 영희의 존재가 철수와 순희 간의 균형을 파괴한다는 논변이다. 이러한 입장은 철수와 영희 그리고 순희 자신이 구조되어야 할 각자의 행위자 상대적 이유(agent-relative reason)를 고려하기에 “다수의 이익”을 행위자 중립적 이유(agent-neutral reason)로 고려하는 결과주의 와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균형파괴자 논변은 다수를 구해야 하는 원칙이 실제로는 더 적은 수로 이루어진 집단에 속한 사람을 불공평하게 대우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철수가 영희와 같이 우연히 A섬에 있었기 때문에 행운으로부터 이득을 보게되었다는 견해에 근거한다. 철수가 행운 때문에 이득을 보게 된다는 것이 B섬에 있는 순희의 입장에서는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행위자가 갖는 도덕적 행운과 불운이 최소한 일반적으로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할 때, 대응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행운이 언제나 불공평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님을 고려할 때, 위와 같은 상황 역시 B섬에 있는 순희가 불공평한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3) 좋음에 대한 책임전가적 설명 방식(Buck-passing account of Goodness)
“텔레비전이 좋다”고 할 때, 이는 텔레비전이 좋음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이해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텔레비전이 좋음의 속성을 가지는 이유는 “넓은 화면을 가지고 있음”과 같은 텔레비전의 하위 속성에 의해 텔레비전이 좋음의 속성을 지닌다고 여겨진다. 그렇기에 우리가 텔레비전을 사도록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 이유는 그 텔레비전이 좋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즉, 이 경우 좋음은 이유-제공적(reason-providing) 힘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토마스 스캔런은 좋음이 그 자체로 이유-제공력을 지니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텔레비전을 사도록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 이유는 그 텔레비전이 좋기 때문이 아니라 보다 하위 속성이 넓은 화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좋음의 이유-제공력 혹은 이것의 규범적인 책임(the normative buck)은 그 보다 구체적인 하위 속성인 “넓은 화면을 지님”으로 전가된다. 이를 ‘좋음에 대한 책임-전가적 설명’(the buck-passing account of goodness)이라고 부른다.
좋음에 대한 책임-전가적 설명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니는데 하나는 좋음의 이유-제공 불가능성이며 다른 하나는 좋음의 잉여성(redundant)이다. (좋음의 잉여성이 참이라고 해서 좋음의 이유-제공 불가능성이 참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특징을 지지하는 논변으로는 잉여논변(the redundancy argument)과 다원주의로부터의 논변(the argument from pluralism)이 존재하는데 먼저 잉여논변부터 살펴보자.
잉여논변(the redundancy argument)
스캔런은 좋음에 관한 무어적(Moorean) 설명의 대안으로 좋음에 대한 책임 전가적 설명을 제시한다.
좋음에 관한 무어적 입장: 대상 X의 하위속성이 그것을 좋은 것으로 만들 때, 우리가 X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실천적인 이유들은 좋음에 의해 제공되며 하위속성들은 그러한 이유-제공력을 결여한다.
좋음에 대한 무어적 입장은 오히려 하위 속성들이 이유-제공력을 결여하며 좋음이 이유 제공력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기본적인 스캔런의 예는 “어떤 휴양지는 좋다”라고 할 때, 그 휴양지가 지니는 “유쾌함”(pleasantness)이라는 휴양지의 하위 속성이 그것을 좋은 것으로 만들어 주며, 우리가 그곳을 방문하거나 남에게 추천할 이유 역시 동일한 하위 속성에 의해 완전히 제공되기 때문에 그 상위 속성인 좋음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유-제공과 관련된 좋음의 역할은 잉여적이라는 것이다.
다원주의로부터의 논변(the argument from pluralism)
스캔런의 다원주의로부터의 논변은 우리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은 매우 다양하며 이드을 좋은 것으로 만들어 줄 근거 또한 다양하다는 사실로부터 제시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유쾌한” 휴양지를 좋은 휴양지도 말하면서 “암의 원인을 밝히는” 연구를 좋은 연구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을 좋게 만들어 주는 하위 속성은 매우 다양하다고 할 수 있고 이들이 공통적인 하나의 속성을 지닌다고 여기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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